너에게 사막의 낙타를 보낸다. 뜨거운 한낮의 바람과
차디찬 밤중의 모래를 견디고 걷어 올린 한 장의 그림.
달빛이 만들어준 눈부신 조명.
그 안에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과 당신이 들었다.

한 장의 사진을 담아내기 위해 사진가는 때로 많은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누군가는 맹수의 숨죽임과 같다 하지만, 실상 앞을 향해 나아가는 달팽이의 움직임이나 다름없다. 느린 듯, 멈춘 듯 보이나 눈과 머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니 말이다. 사막에서 머물던 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기대했다. 하지만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을 밝혔다. 별들은 그 안에 숨었다. 사막 한가운데 들어오는 일이 어디 쉬운가. 낙담할 시간이 없었다. 하늘의 별빛은 담지 못해도 달빛 덕분에 땅 위의 낙타가 잘 보였다. 제멋대로 다니려는 낙타 무리를 쫓아 추운 밤을 지새운 끝에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건졌다. 생각의 전환은 종종 상황을 더 빛나게 한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것은 빛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받는 일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하지만 지중해를 사이에 둔 채 유럽과 마주하고, 뜨거운 사막과 눈 덮인 산이 공존하는 곳. 이주해 온 아랍인과 원주민인 베르베르인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 다양한 빛으로 섬세하게 직조된 모로코는 그야말로 빛의 왕국이다. 환경과 종교 그리고 문화로부터 발원한 빛이 어떻게 삶으로 발현되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모로코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녹색의 별이 그려져 있다. 붉은색은 고대의 조상인 알라위트가의 깃발 색에서 유래됐으며, 순교자의 피와 왕실을 의미한다. 또한 이곳의 붉은 토양에서 만들어낸 건축 재료는 결국 모로코에 ‘아프리카의 붉은 보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특히나 마라케시(Marrakesh)는 붉은색으로만 건물을 지어야 할 만큼 색채의 특성이 강한 도시다. 모로코의 옛 수도인 페스(Fez)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케시에는 이곳의 심장, 쿠투비아 모스크가 도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12세기 말에 건립된 이 모스크의 첨탑은 높이가 77m나 되어 도시 어디에서나 여행자들에게 방향을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하루 다섯 번, 이슬람교 특유의 기도 소리 ‘아잔’이 흘러나오면 신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특히나 해 질 무렵 들려오는 아잔 소리는 도시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한다.
“내부에서 느끼던 생의 밀도와 온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섰을 때 나 자신이 광장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 광장이었던 것만 같았다.” 198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야스 카네티는 모로코 여행 에세이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에서 마라케시의 제마 엘 프나(Djemaa el Fna) 광장을 두고 이러한 심상을 읊었다. ‘축제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하루 세 번 옷을 갈아입는다. 아침에는 온갖 만물을 파는 시장에서, 낮에는 거리의 공연장으로, 밤에는 활기찬 야시장으로 변신한다. 특히나 낮에는 연극을 펼치는 사람, 뱀을 부리거나 불을 삼키는 묘기를 부리는 사람과 재담꾼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 자원이 풍부한 모로코의 야시장에는 삶은 달팽이부터 낙타 고기로 만든 버거, 모로코 고유의 음식 타진 등 다양한 음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음식은 고유의 향이 느껴지면서도 우리 입맛에 잘 맞아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흔히 ‘사하라 사막’이라 부르는 사하라는 아랍어로 ‘사막’이라는 뜻이다. 결국 ‘사하라 사막’이라 쓰는 것은 동어반복이겠으나 사막 중의 사막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꼭 틀린 말은 아니리라. 약 860만km²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가장 건조도가 높은 사막이기 때문이다. 이 사하라가 바로 대서양 연안의 모로코에서 시작해 동쪽의 나일 강에서 끝난다. 그 길에 낙타와 함께했다.
마치 모래로 뒤덮인 붉은 바다와도 같은 사하라는 약 1억 년 전 두 번의 빙하기를 거치고 풍화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낙타를 타는 일이 편안하지는 않으나, 사람의 걸음과 비슷한 낙타의 속도에 점차 적응되면서 사막 깊은 곳의 모래 언덕을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임을 알게 됐다.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에서 인도의 자이살메르 사막까지, 지구의 여러 사막을 다녀보았지만 이처럼 온전히 고요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들어선 일이 과연 있었던가. 찬란한 달빛 아래 천막을 세우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사막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중고생 시절 우주의 신비를 찾아 전국 곳곳을 헤매던 때가 떠올랐다. 오롯이 한 대상을 향해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했던 때. 그때의 소년은 오늘도 소리 없이 달빛을 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도 땅 위의 빛을 조탁하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