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종두 그림 이경숙

 

우리는 산업혁명에 이어 정보화시대를 지나 앞선 두 시대의 영향으로 불거진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녹색’을 생각하는 시대에 와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인류의 공동 과제인 환경문제를 인식하며 그린경영, 그린마케팅 같은 것들을 홍보합니다. 그렇게 사업을 해야만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업들이 광고하듯, 상품을 만들 때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할 수 있게 디자인을 하고 윤리성과 철학을 갖춘 경영으로 그것을 뒷받침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수 기업들은 원가절감에 치중해 경제 이익을 높이는 효율 중심 전략을 여전히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국가나 정부, 환경단체가 자신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제재를 가해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그것에 대비한 방어용 사전 예방장치의 하나로 친환경 홍보 전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친환경’ 가치를 홍보에 이용하는 수준에 그치는 실정인 겁니다.

 

좀 더 낱낱이 살펴보면, 컴퓨터의 에너지효율성 향상을 크게 부각하면서도 사람에게 유해한 금속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래 숨깁니다. 재생섬유를 사용한다고 광고하면서도 그 사실을 뒷받침할 정확한 증거나 인증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화학물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알리면서,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화학물질을 투입해 상품을 만드는 위선적인 행위도 이뤄집니다. 이렇듯 좋은 기능만 부각시키고 자기 기업에게 불리한 점은 숨기는 행위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텀블러와 에코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넘쳐나는 종이컵을 대체하는 텀블러, 대량 소비되는 비닐 봉투를 대체한다는 에코백이라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만을 고려해, 대중의 소비 욕구를 부추기며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친환경 가치를 구현해내는 것들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또다시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어 버려지며, 재사용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겁니다.

 

 

모든 만물은 생성과 관계맺음, 소멸 과정을 겪으며 순환합니다. 물질 가치를 우선시해 만들어진 불균형을 극복하고 환경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유욕을 내려놓고 이러한 순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친환경 가치 속에서 사람들과 건강하게 소통하기 위해 기업들은 우선, 자기만의 경영철학을 갖추어야 합니다. 단호한 의지와 확신으로 설계, 생산, 홍보, 유통, 소비, 폐기, 수거라는 전체 과정에서 에너지절감, 자원절약, 유해물질 문제, 재활용 방안, 사용수명 최적화 같은 부분들을 생각해 상품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생을 세심히 고려해 물건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지, 생태계에 나쁜 영향은 없는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겁니다. 결론으로 우리가 만드는 물건 역시 자연의 순환 섭리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린디자인’ 말의 역사를 보면, 세계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쳐 녹색당의 활동이 많아지는 1980년 초반에 생성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의 피해를 막아보려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 뒤 1980년∼1990년 사이에 ‘에코디자인’이라는 말로 바뀌어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경공학분야에서 유해물질 저감과 신물질 개발과 관련한 가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뒤 1990년∼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속해서 삶을 디자인하자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는 가치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린디자인이라는 말이, 제품과 관련한 산업분야의 일부분으로, 단순히 상표로서 친환경에만 초점을 맞춘 ‘겉포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환경에 국한된 그린디자인보다는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 이뤄져야 합니다. 우주의 지구도 순환이라는 공전을 하고 있듯, 자연 역시 순환의 섭리를 지키듯 사람도 순환이라는 순리에 순응해야 건강한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쓰는 상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활 속 의식주의 일부분이니, 상품 역시 순환해야 합니다. 만들어짐이 있고, 관계 맺기를 생각하고, 분해되어 소멸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썩지 않고 두고두고 남는 쓰레기가 되어 해를 끼칠 것이며, 상품의 에너지는 탁함과 부정으로 발현될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품과, 그것을 쓰는 우리를 같은 시선에 놓아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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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종두 님은 그린연구소 소장으로, 서울시 그린디자인 자문위원과 국민대제로원센터 강의교수, 제주도 행복한생명 그린대학 학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관념을 전환시켜 싱싱한 생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균형 디자인’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