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만남이 있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만남,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 눈에 보이거나 잡히진 않는 추상적인 대상과의 만남 등 세상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순간도 하나의 끈처럼 서로 관계하며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만남 중 내 인생 최고의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내 핏줄이자 선조들의 땅인 고국과의 만남이다. 나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소련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소련의 15공화국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 조국은 우즈베키스탄이고 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조국은 그저 내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땅이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닐 때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조국이라고 알아온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었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물으셨다. “왜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니?”,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으니까요. 여기서 태어났으니 제 조국은 우즈베키스탄이 아닌가요? 조국에 대해 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니? 당연히 한국 사람이지. 물론 태어난 곳은 우즈베키스탄이지만 네 핏줄은 한국이란다. 그러니 넌 한국을 조국으로 둔 한국 사람이지.” 어머니의 그 말씀은 마음속의 정적을 깨뜨리며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 내 조국이 우즈베키스탄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내가 알고 있던 코리아? 도대체 왜 그렇지?’

 그날 이후, 내 근원, 내 핏줄에 대한 물음은 커져갔고, 그 관심의 대상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그렇게 한국은 내 마음속에 큰 자리를 차지했고, 호기심만큼 꼭 알아야겠다는 열망 또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내 핏줄, 내 조국, 내 근원에 대한 지도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여정의 첫 출발은 과거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알고자 했던 노력들처럼, 한국에 대해 하나하나 알기 위해 공부해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정의 농도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나라는 소련이었으므로 남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 있는 경로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국 한국이 두 나라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도 혼돈과 혼란을 초래했다.

 이처럼 많은 생각들이 교체하던 중,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는 소련 말기였기 때문에 소수민족문화 부흥책의 일환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아직도 처음에 배운 한국어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두루미 다리가 길다, 아이가 우오’였다. 길진 않지만 그때 배우고 익혔던 한글 자음과 모음은 이후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한동안 뜻은 이해 못했지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한-러 수교 수립 등 나라 안팎에는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토록 머나먼 조국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학시절 만났던 남북한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를 거세게 불러일으켰다. 고국 한국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아니 꼭 가야만 하는 내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천 리 금수강산의 조국을 갈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리움만 쌓여가던 중,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을 통해 재외동포고국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느낀 설렘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설렘과 기쁨, 두근거림과 행복감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준비하면서도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늘 이 생각만 했었다. ‘고국과의 만남은 과연 어떨까?’

 드디어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꿈에도 그리던 고국 방문의 날이 되었다. 모스크바에서 고국 한국과의 만남을 위해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났다. 나의 조부모님들도 늘 그리워하시던 땅, 한국으로. 9시간 후, 비행기는 서서히 몸을 낮추며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과의 첫 만남은 오감(五感)을 활짝 열어주었다. 사방에 울려 퍼지던 매미 소리, 아름답게 만발한 무궁화, 포근한 향기까지 정성껏 나를 기쁘게 맞이하는 듯했다. 그간의 추억들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내 눈 앞에 펼쳐진 감동적인 순간들과 만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고국 산천을 떠나서 수천 리 타향에/ 산 설고 물 선 타향에 객을 정하니/ 섭섭한 생각은 고향뿐이요/ 다만 생각나노니 정든 친구라”<망향가(望鄕歌) 中>.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할머니께서 늘 부르시던 이 노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아름다운 조국 강산에 대한 이야기, <심청전><흥부전><춘향전>을 낳은 땅,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주제곡 <손에 손잡고>처럼 동서양을 하나로 묶어준 5천 년 역사의 이 땅은 한국, 내 생(生)의 근원이자 삶이 뜨겁게 흐르는 고국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파블로프 국립의과대학교를 거쳐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박사. 現 분당서울대학교 병원 국제진료센터 부교수.



사진.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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