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지현 그림 노계선

 

붉은 태양이 서쪽 지평선 너머를 지날 무렵, 하늘에 물드는 노을은 별밤의 시작을 알립니다. 살며시 어둠이 내리면서 밝은 별부터 하나 둘 나타납니다. 동짓날 밤하늘이 별빛으로 채워집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하늘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더 맑은 별빛이 다가옵니다. 겨울은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계절이지요. 차가운 기운만큼 하늘은 맑고 투명합니다. 밝은 일등성이 저녁 동남쪽 하늘에 많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일등성은 열다섯 가량인데 겨울철 별자리에 일곱이나 모여 있습니다.

 

 

겨울을 대표하는 전통 별자리는 하늘나라 장군별이 모여 있는 ‘삼수’입니다. 서양에서는 오리온자리로 부릅니다. 눈에 잘 띄는 별자리라서 도시하늘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답니다. 밝은 네별이 방패연 모양의 사각형을 만들고 그 가운데 세 별이 나란히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날갯짓 하는 나비를 닮았고 밤하늘에 걸린 커다란 창문 같기도 합니다. 삼수 중심의 세 별 바로 아래에는 솜털같이 뿌옇게 보이는 성운이 있습니다. 성운은 우주 공간에 가스와 먼지가 많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런 성운이 뭉쳐지면 별이 태어나지요. 동지의 길고 깊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별의 탄생을 바라봅니다. 먼지와 가스로 둘러싸인 두터운 어둠이 빛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둠이 별빛을 위한 무대가 되어준 것이어요. 그래서 어둠이 깊고 진할수록 별빛의 춤사위는 더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밤하늘이 맑고 깨끗한 시골이라면 삼수 왼쪽 편으로 여린 별빛이 총총히 흘러갑니다. 그건 바로 겨울밤에 나타나는 은하수입니다. 은하수 가까이 있어서일까? 하늘우물 별자리가 보입니다. 삼수의 오른쪽 아래를 보면 옥정(玉井)별자리가 있습니다. 옥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담겨 있는 하늘나라 우물입니다. 이 별자리를 바라보며 맑은 물을 마시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문득, 고향 시골집 마당에 있는 우물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동짓날 아직 별빛이 남아있는 이른 새벽에 우물가로 가셨지요. 첫새벽에 길은 정화수를 장독대에 올려놓고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우물을 길어 아침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먹은 음식에는 어머니의 정성과 함께 우물의 맑은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우물에는 하늘과 땅의 기운도 함께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모여 비를 내리고 그 비가 땅과 만나 우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삼수(오리온자리)에서 눈걸음을 위로 옮기면 5각형 모양의 다섯 별이 밝게 빛납니다. 서양에서는 마차부자리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수레자리’라고 합니다. 옛날 수레에는 무엇을 주로 싣고 다녔을까요? 곡식이겠지요. 그래서 하늘수레자리를 이루는 별에는 곡식이름이 여럿 붙어있습니다. 위쪽의 제일 밝은 별이 콩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조별, 쌀별, 옷감으로 쓰인 삼베별, 보리별입니다.

 

동짓날 초저녁, 콩별은 겨울 별자리를 앞장서서 이끌면서 동남쪽 하늘에 떠오릅니다. 밝은 별이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콩별’ 참 정겨운 이름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콩별은 콩 농사가 잘 되도록 보살펴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농부들은 콩별의 밝기를 헤아려 이듬해 농사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콩별이 여느 해보다 더 밝게 보이면 이듬해 콩을 많이 심었고, 조금 어두워 보이면 덜 심었다고 합니다. 올해 동지에는 콩별이 더 밝게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내년 농부들의 마음에도 더 큰 풍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동짓날에 떠나는 밤하늘 별빛여행의 절정은 언제일까요? 밤 12시 자정입니다. 일 년 중에 가장 깊은 어둠과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가장 차갑게 얼어붙은 어둠 속에 빠져드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시리고 시린 어둠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봄의 별자리와 첫 만남을 하는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짓날 자정 무렵에는 동쪽하늘로 어김없이 봄의 별자리가 성큼성큼 올라옵니다. 그 진한 어둠 속에서 맑고 밝게 빛나는 봄의 별과 만납니다. 새 봄의 첫 발걸음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옛날에는 날씨가 좋은 밤이면 언제든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맑은 별빛을 만나기 위해 하늘이 깨끗한 곳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도시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까만 밤하늘을 찾기란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조금의 별빛이라도 더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주위가 어두우며 사방이 트인 곳이 찾아봅니다. 가로등이나 건물에서 나오는 빛이 직접 비치지 않는 곳이 좋습니다. 그래야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별이 잘 드러납니다.

 

서두르지 말고 여유롭게 별과 만나야 합니다. 우리 눈이 어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움직이거나 또는 그 반대일 때 눈의 동공은 크기가 곧장 달라집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려는 반응입니다. 제대로 어둠에 적응하려면 이러한 동공 크기 변화 말고도 눈의 감각도 높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5분에서 20분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 해서 ‘암적응’이 되고나면 희미한 것도 점점 잘 보입니다. 특히 푸른색 빛에 가장 민감해지고, 붉은색 빛에는 다른 것에 비해 둔해집니다. 천문학자들은 붉은색 손전등을 주로 쓰는데 이것은 눈의 암적응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시에서도 별과 만나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도시 하늘에서 별보기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제 막 밤하늘과 친해지려는 사람들에게, 별과 만나는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도시 밤하늘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희미한 별들은 안 보이고 몇몇 밝은 별들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도시 밤하늘에 나타나는 그 몇몇 별들은 알고 보면 모두 유명한 별입니다. 그리고 별자리를 찾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이지요. 그러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집 앞마당에서 혹은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찾아보세요. 그 별을 길잡이로 삼아 아름다운 밤하늘 여행을 시작해 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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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님은 <별가족 태양계 탐험을 떠나다>, <별헤는 밤 천문우주실험실>, <풀코스 별자리 여행>등의 책을 쓴 우주과학 작가다. 수리산자락에서 손바닥만 한 텃밭 농사를 짓는다. ‘과학동아 별학교’에서 별과 우주에 관한 강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