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여행을 떠나기 전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어머님은 우리 나이로 95세이시다. 작년 초겨울에 낙상하셔서 척추뼈 골절을 앓고는 걸을 수 없게 되셨다. 9년째 앓고 있는 노인성 치매는 어머니 얼굴의 깊고 깊은 주름만큼이나 골이 깊다. 공유한 기억들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다. 요양병원을 나오는 발걸음은 무겁고, 차디찬 동지섣달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얼릴 기세다.

하지만 나는 내일 서호주 퍼스(Western Australia Perth)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1년에 두어 번 밤하늘의 별을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천체사진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행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내게 주어진, 아니 적극적으로 선택한 운명 같은 것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어린 시절 더위를 피해 밖에서 모기장을 펴고 엄마 곁에 누워서 바라보던 영롱한 별들의 기억부터였을 것이다.

왜 나는 기억 속의 그 아름답던 별 풍경을 느끼기 위해 멀리 가야만 하는가? 어쩌면 놓아 버릴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의 끈을 잡기 위해서일 수 있고 어린 시절 보고 느낀 별에 대한 첫 경험 같은 것을 느껴 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별을 보고 우주를 동경하며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구를 느낀다는 것은 내게는 시간이라는 자각이고, 어쩌면 우리 은하의 수조 수천억 개에 달하는 행성 중 하나밖에 없는 귀한 푸른 행성, 바로 지구의 고귀함을 느끼는 일종의 종교와 다름없다.

서호주 퍼스에서 북으로 3시간 남짓 달리면 남붕국립공원(Nambung National Park)의 피나클사막(Pinnacles)이라는 곳이 나온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의 향과 인도양의 바다 내음, 그리고 어쩌다 마주치는 왈라비와 캥거루와의 만남은 이곳이 태양계의 행성 지구의 남반구가 아니고 마치 외계의 어떤 행성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아늑함과 평안함에 빠져 달 없는 밤에 카메라를 들고 거니는 것을 꽤 좋아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쪽 하늘은 늘 생경한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사진1). 마치 한국의 영하 15도의 혹한에서 서호주의 영상 35도가 넘는 기온의 차이만큼이나 새로운 모습으로 말이다. 북반구 겨울의 하늘을 수놓는 대표적인 별자리인 오리온이 남반구에서는 거꾸로 북쪽하늘에 치우쳐져 있다. 그리고 남쪽 하늘로 눈을 돌리면 북반구에서 볼 수 없는 남쪽 은하수와 그 중심에서 빛나는 남십자자리를 볼 수 있다.

은하수의 오른편 서쪽으로는 소마젤란 대마젤란은하가 보이고 은하수 중심에서 빛나는 작은 구름 같은 것이 보인다. 북쪽의 오리온 대성운과 견줄 수 있는 더 크고 밝은 에타카리나 성운이다(사진2; 에타카리나 성운; 지구로부터 6,500~10,000광년 거리에 있으며 우리 은하에서 가장 큰 성운에 속한다. 내부에는 태양의 백배 크기의 용골자리 에타성이 있으며 주변으로는 밀도 높은 암흑성운 주위로 별이 태어나기도 한다).

에타카리나 성운 안의 에타성은 우주적인 시간으로 머지않아 장렬히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덩치가 큰 만큼 태양처럼 길고 오랫동안 백억 년 가까이 살지는 못한다. 수만 년밖에 살지 못하는 거대한 별의 최후는 장렬할 것이다. 어쩌면 그 최후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별의 최후는 다시 주변의 밀도 높은 성간 물질들과 함께 새별을 잉태할 것이다. 저 수많은 별, 그리고 물질들은 인간의 삶과 꽤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