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성향이나 특징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아주 좋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거리에 놓인 사물들을 볼 수 있었고, 시력검사를 할 때면 항상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당시에 더 높은 등급의 시력 검사가 있었다고 해도 아마 별문제 없이 작은 글자들을 척척 읽어냈을 것이다.

급격하게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사이다. 온종일 똑같은 거리에서 컴퓨터를 마주하거나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그리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시력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현재의 변화에 적잖이 난감해하고 있다. 어릴 때는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어른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부러울 게 따로 있지, 눈 나쁜 게 부럽냐’며 황당해했지만, 나는 당시에 ‘안경 쓴 사람’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갖고 있다는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눈이 나쁘다’는 느낌이었다.

눈이 나쁘면 어떤 느낌일까, 앞이 흐릿하게 보이는 걸까, 멀리 있는 것만 안 보이는 걸까, 아니면 전체적으로 흐리멍덩하게 보이는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는 안경을 쓰는 친구들에게 눈이 나쁜 느낌을 설명해달라고 졸랐다. 대부분은 자신이 놀림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못마땅해 했지만, 몇몇은 아주 친절히도 자세히 그 느낌을 설명해주었다. “안경을 쓰면 또렷하고 안경을 벗으면 뿌옇게 보여.” 친구들의 말에 나는 안경을 빌려 써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세상이 꿈을 꾸는 것처럼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이내 핑핑 도는 느낌이 돌고 어지러워졌다. 결국 나는 눈이 나쁜 느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 버렸다. 최근까지도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눈이 나쁜 느낌을 설명해달라는 요구를 종종 했었지만,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들어도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에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면서 비로소 20년 넘게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겪어보니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여간 불편하고 피곤한 일이 아니다. 늘 또렷하게 다가오던 세상은 꼭 한여름 아지랑이처럼 불분명한 경계선을 남기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관 스크린에 반사되는 글자들도 전처럼 또랑또랑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안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어린 날에 그토록 부러워하던 ‘안경 쓰는 사람’이 될 기회가 왔는데도 이제는 스스로 마다하고 있다.

나는 눈이라는 게 근육처럼 쓰면 쓰는 대로 발달한다고 믿고 있다. 단지 지금 나의 생활이 눈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컴퓨터나 책이 아닌 탁 트인 환경과 가까워지면 다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믿음과 조금의 기대감을 남겨두고 싶어 안경을 쓰지 않는지도 모른다. 안경을 써버리는 순간, 내가 눈이 아주 안 좋아졌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될 테니까.

지금까지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아주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다. 단지 예전만큼 선명한 느낌이 없을 뿐이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사실 지금 이렇게 보는 세상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는 세상의 모습이고, 훨씬 더 보편적인 광경에 가까운 건 아닐까? 그동안은 시력이 너무 좋았던 탓에 지금의 변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뿐이고, 어쩌면 내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눈이 나빠지고 나니 분명 좋은 점도 있다. 보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껏 당연하게 봐온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약간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되새기게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금의 불편함이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라도 보는 즐거움과 감동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싶다.

볼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무수한 색과 형태를 내 눈으로 보고 구분하고 인식하고 느끼며 살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게 놀라운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면, 그게 뭐가 됐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신비하다.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겠지만, 매일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계속 내게 말해줄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기적을 살며, 기적을 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