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의 아파트 단지는 평화로워 보인다. 고요함을 깨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저 빈 주차장이건만 아이들에겐 그곳의 모든 것이 흥미로움으로 가득 찬 듯하다. 옹기종기 그려진 주차선, 탁한 녹색과 붉은색, 옅은 회색으로 이루어진 보도블록의 무늬, 숨바꼭질하듯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등장했다 사라지는 고양이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울까? 나는 그곳에서 마치 이방인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주차장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맞벌이하는 부부를 대신해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할머니들. 친구들은 다들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대학원 실험실을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몇 년째 제대로 된 벌이도 없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게 된 상태였다.

아이들의 즐거움에는 끝없는 호기심이 동반된다. 왜 하늘은 파랗고 왜 새들은 노래를 지저귀며 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아이들의 호기심은 과학자의 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많은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몰라도 그만 일터인 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에, 사소한 것들에 감탄할 줄 아는 것이. 때론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모험심이. 이 모든 것이 세상을 알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아이들의 호기심은 일시적이다. 그것이 깊이 있는 지적 호기심이 되기 위해선 끈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호기심이라는 것은 그들을 위험으로 이끌기도 한다. 혹은 개미들이나 콩벌레, 나비들을. 그리고 많은 어른들이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말대답을 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아이를 귀찮게 여긴다. 자연스럽든, 인위적이든 귀중한 특질들은 사라져간다. 나 역시 그런 어른 중 하나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실험실을 그만둔 것에는 결국 내가 지적으로 게으르다는 것이 컸다. 게으른 사람에겐 길도, 답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재미있기보다는 무척 고되게 느껴진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ed the cat)’라는 속담이 있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에 응수하는 말이 재미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지만 만족이 다시 살렸다(curiosity killed the cat but satisfaction brought it back).’ 만족뿐이랴,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에는 절로 애정이 따를 것이다. 상상해보라. 1mm의 예쁜꼬마선충이라던가 우스꽝스러운 불가사리에 몇십 년이나 되는 시간을 바친다는 것을. 동기 중 한 명이 초파리를 이용해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 농담에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초파리도 보다 보면 귀여워. 이제 얘들이 구분이 가.”

생물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는지 여전히 나는 집에 벌레가 나오면 엄마부터 찾는다.

나는 지금 5년에 걸쳐 이 작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처음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을 땐 제목도 없었다. 변변찮은 일거리 하나 없이 집으로 가는 길이 괴로움을 지나 무미해진 날에 아이들의 선명한 감정들이 어쩐지 새롭게 와 닿았을 뿐이다. 뜻밖의 행운이 작업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신문에 연재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기자분 덕에 비로소 작업의 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결국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된 셈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치유 받고자 했다거나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귀여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유년의 기억은 내가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느리고 명쾌하지 않은 여정에는 ‘왜’라는 말보다는 ‘어떻게’가 어울린다. 그럼에도 왜 아이들을 그리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때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