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에는 아직도 오래된 참기름집과 세탁소, 분식집이 남아 있다.
이 오래된 공간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계동은 근 3년 사이 크게 변했다. 먼지가 자욱이 앉아 있을 것 같던 작은 동네 슈 퍼마켓이 24시 편의점으로, 세탁소나 방앗간이 소형 체인 카페로 바뀌었다. 지난여 름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인 ‘중앙탕’이 젠틀몬스터의 쇼룸으로 변신하며 변화는 가 속화되었다. 이 길을 떠나간 카페나 식당도 수두룩하다. 삼청동과 북촌을 향하던 관광 객들이 계동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고즈넉한 옛 동네’라는 타이틀은 계동 에 어울리지 않는다. “동네가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방향 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으니까요.” 얼마 전 계동에 새롭게 생긴 공간 ‘하트’ 의 허유 대표가 말했다. 그는 아틀리에 ‘램’을 운영해온 이로 11년 전 삼청동의 변화를 몸소 겪었다. 이후 계동으로 넘어와 아틀리에 램으로 쓰던 한옥을 지난 4월, 하트라는 공간으로 다시 탈바꿈시켰다. 그는 부러 간판도 달지 않았다. 그 덕분에 손님이 와르르 몰리지 않아 그가 꾸며놓은 공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과거 계동의 고즈넉한 분 위기를 이곳에서 느꼈다. “계동이 가진 공공재적인 가치 때문에 삼청동처럼 우르르 변 하진 못할 거예요.” 그의 말처럼 아직도 계동엔 오래된 미용실이나 반찬 가게를 겸하 는 백반집, 작은 슈퍼마켓, 떡볶이 가게를 여전히 발견할 수 있었다. 평일 한낮엔 아직 도 외지인보단 동네 주민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하얗게 센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중앙 고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노닥인다. “상상하던 시골 동네를 마주한 기분이었어요.” 계동길 끝자락이자 중앙고 앞에 문을 연 책방 ‘베란다북스’의 주인장 부부가 들려준 계 동의 첫인상이다. 학교 뒤쪽으로 보이는 북악산 자락과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굽이진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계 동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계동의 변화는 홍대나 이태원처럼 세련된 건 물이 들어서며 골목이 아예 사라지거나 동네의 스카이라인이 몰라보게 변하는 것과는 달랐다. 옛 건물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한 달 전 문을 연 꼬치집 ‘스틱’이 대표적이다. 주인장의 아들이자 계동에 관한 사진 작업을 진행한 아티스트 바 른이 직접 매장 인테리어를 맡아 골목과 어우러지도록 소박하면서도 복고적인 요소를 살렸다. 이외에도 계동길 초입에 한옥 기와를 그대로 살린 비스포크 숍 ‘노커스’, 한동 안 ‘진미용실’이란 간판을 그대로 달고 영업해온 가수 요조의 ‘책방 무사’, 한옥을 개조 한 도예가 한나래의 공방 겸 쇼룸 ‘핸더스’ 등은 오래된 공간이 지닌 가치를 흩트리지 않고 각각 개성을 담은 채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동안에도 계동의 터줏대감인 ‘카페 공드리’, ‘파티세리 희원’, ‘노란벽 작업실’ 등은 그 자리에 남 아 있다. 계동은 여전히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동네다. 계동은 해가 지면 모습을 달리한다. 낮 동안 골목에 북적대던 사람들은 밤이 되면 더 운 열기와 함께 모두 빠져나간다. 손에 꼽을 정도로 몇몇 가게만이 문을 열어, 골목에 는 은은한 불빛이 내린다. 이 시간, 카페 공드리의 테라스에 앉아 여름밤 훈훈한 공기 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실 것을 권한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처럼 과거로 넘어가 고즈넉하고 정겨운 동네 계동으로 흘러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베란다북스

계동길 끝자락에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책과 푸르른 식물이 쇼윈도를 채운 동네책방이 있다. 누군가 서재로 꾸며둔 베란다에 들어온 듯 아늑한 느낌이 드는 베란다북스다. 일러스트레이터와 패션디자이너 부부가 함께 꾸리는 시각 예술 책전문 책방으로 작가가 직접 제본까지 참여한 독립 출판물부터 해외 일러스트레이터 작품집, 어른을 위한 만화책인 그래픽 노블, 미술관에서만 보이던 전시 도록, 엽서와 포스터, 배지 등 디자인 제품이 한데 모여있다. 평소 주인장 부부가 눈여겨보았던
작가, 북 디자인으로써 가치가 있는 책 등을 주로 들여온다. 책방은 소규모 출판사도 겸해, 얼마 전엔 첫 번째 출판물인 박정은 작가의 <슬픈 몸> 도록을 출간했다. 향후 주인장의 일러스트 작업을 담은 책도 출판할 예정이다. 최근 책방에 입고된 책 중 상상의 북한 친구에게 편지를 쓴 <보고 싶은 친구에게>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그린 변영균 작가의 <물안개>는 주목할 만한 도서다. 모두 짧지만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남는 책들이다. 글이 아닌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많아 계동길을 지나가던 외국인 여행자들도 부담없이 둘러본다. 앞으로 ‘작가와의 대화’ 같은 이벤트도 열 계획이다.

LOCATION 종로구 계동길 120
TEL 070-4025-9737

“테일러 숍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노커스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박영철 & 박지현 (‘노커스’ 대표)

 

노커스

계동길 초입을 지나다 창문 너머로 한 노신사와 눈을 마주친다. 인자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는 노커스 대표 박지현의 부친이다. 아들과 아버지, 두 사람이 운영하는 노커스는 남성 맞춤 테일러 숍이다. 노커스에 들어서면 여타 다른 테일러 숍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눈빛과 말투에서 불필요한 힘을 뺀 직원들, 부담감을 덜어낸 가격대의 제품들. “’맞춤 정장’을 무조건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한국 남성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했어요.” 이들은 단지 고가의 제품을 권하는 것이 아닌, 고객과 깊이 있는 상담 후 그의 이야기와 장점이 묻어나는 스타일을 창조해낸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라도 고객에게 어울린다면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직접 공수해온다. 테일러링뿐만 아니라 그루밍, 라이프스타일 등 신사로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도 함께 제안한다. 고객을 위해 가게 한편에 마련한 바에서는 다양한 칵테일을 제공하고 있다.

LOCATION 종로구 계동길 23
TEL 02-542-3208

 

핸더스

안국동 윤보선 생가 골목길 안에는 오래된 한옥을 고스란히 살려 개조한 운치 있는 도자기 공방 핸더스가 자리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울 한복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막이 감돈다. 도예가 한나래의 작업실인 이곳은 공예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는 스튜디오와 더불어 공예 제품들을 판매하는 쇼룸, 전시나 모임을 위한 갤러리로 이루어진다. 쇼룸에서 만날 수 있는 한나래의 도자기는 생활에 기반을 둔 실용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제품들이 대부분. 이 밖에 옻칠 작가 이민경의 트레이 제품들, 도예가 조원석의 백자 그릇 등 공예 작가들의 다양한 생활 작품도 준비되어 있다. 쇼룸 옆에 마련된 갤러리에서는 순백으로 채워진 벽면과 편안하게 흐르는 음악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은 작가들의 전시나 소규모 연주회, 기업 혹은 개인의 모임을 위해 대관을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다. 편하게 들러 차를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도자기 클래스는 매주 화, 수,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원데이 클래스의 일정은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LOCATION 종로구 북촌로1길 30-4
TEL 02-722-5064
WEB hpottery.blog.me

“카페 공드리는 손님들이 함께 어울리며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윤범석 (‘카페 공드리’ 대표)

카페 공드리

6년 동안 계동길을 지켜온 카페 공드리. 극장 스폰지하우스 프로그래머였던주인장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듯 가게 이름은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에서 가져왔다. 전심으로 ‘공들이’겠다는 포부도 함께담았다. 그는 옛날 다방이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전화나 편지도 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공드리 역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로 만들고 싶었다. 그의 바람처럼 계동 인근의 젊은이는 물론 나이 지긋한 중년들도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기본 커피 메뉴와 수제 청 음료, 간단한
칵테일과 맥주, 와인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춰 누가 찾아도 취향에 맞는 선택이 가능하다. 공드리의 가장 큰 매력은 계동에서 유일하게 크래프트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점. 남산 필스너, 한라산 골든 에일, 지리산 반달곰 IPA 등 국내 지명을 담은 맥주를 만드는 크래프트 웍스의 것을 소개한다. 얼마 전 맥주와 궁합이 좋은 신메뉴를 내놓았다. 토르티야 위에 수제 토마토소스를 얹은 피자로 가벼운 식사 겸 안주로 즐기기에 좋다. 여기에 감귤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북촌 페일 에일 한잔을 곁들이면 계동 풍경에 맞는 만찬이 차려진다. 도수가 제법 있는 에일 맥주 말고 자몽이나 진저 같은 시럽을 섞은 맥주 칵테일은 낮에도 마시기 좋다. 계동길을 바라보는 테라스 자리가 여름엔 상석이다.

LOCATION 종로구 계동2길 4
TEL 02-765-6358

 

2134 아멜리에

2134 아멜리에는 식물과 다양한 소품들을 함께 판매하는 꽃집 겸 편집 숍이다. 가게 이름은 영화 <아멜리에>에서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인 21분 34초에서 따왔다. 주인장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감각은 가게에도 넘쳐흐른다. 싱그럽게 내부를 채우는 식물들은 물론이고 보기만 해도 물욕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소품들이 가득하다. 플라워 패턴의 가드닝 소품 ‘와일드 & 울프Wild & Wolf’, 씨앗이 부착된 카드 ‘마치스가든March’s Garden’ 등 식물을 모티브로 하는 브랜드들을 기본으로 문구류, 향초, 테이블웨어 등 다양한 디자인 소품들을 모아놓았다. 동물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포르투갈 그릇 브랜드 코스타베르데Costa Verde의 찻잔과 디자인 성냥을 제작하는 오이뮤Oimu의 앙증맞은 성냥은 꼭 선물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선반이 많은 인테리어 특성을 살려 정기적으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전시를 진행한다. 웹툰 작가 백여진의 <꽃> 전시에 이어 타투이스트 노보의 스케치전이 진행되고 있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쉬어 갈 수 있도록 카페도 함께 운영하는데 일본 탄산음료 브랜드 도모마스Tomomasu가 새롭게 선보이는 4가지 과일 맛의 사이다를 마셔볼 수 있다.

LOCATION 종로구 계동길 73-1
TEL 070-8834-2134

“주제에 맞는 팝업 레스토랑, 낭독회, 연극, 연주 등 이벤트를 기획할 예정입니다.”
허유 (‘하트’ 대표)

하트

주택가 골목길에 간판도 없이 문만 비스듬히 열린 한옥 한 채가 있다. 누군가 살 것 같은 공간 안에 도자기와 직물, 사진과 그림 등이 진열되어 있다. 디자이너 허유의 편집 숍 하트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작가들의 작품과 이곳 대표의 소장품을 전시, 판매한다. 오픈과 동시에 <언쿨Uncool>이라는 타이틀로 유행하지 않는,
쿨하지 못한 물건과 작품을 소개했다. 주얼리 디자이너 블랭크에이의 <라이트 이어스Llight Years>와 매거진 의 에디터이자 사진작가인 장우철의 <건스 & 로지스Guns And Roses>의 전시를 차례로 진행하고 여기에 소장품인 옛 소련의 그림엽서와 그릇, 직물 제품 등을 함께 배치했다. 흔히 새롭고 세련된 것을 가리키는
‘쿨’과 상반되는 것들이지만 어느 하나 촌스러운 것이 없다. ‘쿨하지 못한 것이 가장 쿨한 것’이라는 대표 자신의 가치관이 이번 기획에 녹아 있다. 첫 기획은 7월에 막을 내리고 9월부터 새로운 주제를 시작할 예정이다.

LOCATION 종로구 계동길 100-6
WEB www.instagram.com/hart_seoul

 

 

스틱

가볍게 술 한잔 즐기고 싶을 때, 간단한 식사를 하고플 때 찾기 좋은 식당 스틱. 학교 앞 떡볶잇집처럼 푸근한 분위기에, 꼬치 메뉴를 주로 판매한다. 오징어를 통째로 구워주는 ‘울릉도스틱’, 닭꼬치 ‘계동스틱’, 돈가스 ‘북촌스틱’ 등이 주메뉴인데 평범할 수 있는 요리 위에 고수나 바질, 페퍼민트 같은 허브와 매장에서 손수 만든 특제 소스를 얹어 이곳만의 개성을 살렸다. 모두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아이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꼬치 외에도 토마토와 파프리카, 양파 등 각종 채소를 잘게 썰어 향신채로 맛과 향을 낸 ‘촙촙샐러드’, 코코넛 오일에 볶은 ‘파인애플볶음밥’ 등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는 메뉴도 준비했다. 단양에서 올라오는 오미자 효소를 넣은 ‘오미자 사와’는 상큼하고도 달지 않은 맛 덕분에 향이 강한 음식들과 궁합이 좋다. 레몬을 듬뿍 넣어 많이 마셔도 숙취가 덜하다. 술을 못 마시는 이라면 ‘오미자 에이드’를 추천한다. 저녁에는 예약 손님을 위해 그날 있는 재료로 만드는 창작 요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LOCATION 계동길 69
TEL 02-766-9797

“고풍스런 북촌에서 프랑스 과자를 맛보며 티타임을 즐기세요.”

이희원 ('파티세리 희원' 주인장)

파티세리 희원

계동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파티세리 희원은 마카롱으로 수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디저트 카페다. 자그마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발랄한 미소의 파티시에 희원이 반긴다. 그녀는 과거 공예 관련 일을 했다가 그만두고 제과제빵으로 유명한 르노트르 제과학교를 찾았다. 디저트에 대한 애정과 본격적으로 갈고닦은 실력, 신선한 재료의 힘이 모여 지금의 훌륭한 디저트들이 탄생했다. 이곳을 대표하는 디저트는 단연 8종류의 마카롱. 마카롱의 껍질을 뜻하는 ‘코크’가 퍽퍽하지 않고 쫀득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다. 다양한 맛의 필링은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입안 가득 황홀한 풍미를 선사한다. 훌륭한 타르트들도 맛볼 수 있는데 그중 레몬즙, 레몬 껍질이 풍성한 크림과 부드러운 이탤리언 머랭이 상큼한 조화를 이루는 레몬 타르트가 인기 메뉴. 그녀가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완벽한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

LOCATION 종로구 북촌로6길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