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죽거나 미치지 않고 어떻게 힘든 시간을 이길까

가래떡을 먹으며 ‘홈뒹굴링’ 하는 새해… 밤마다 소주 한 병을 놓고 ‘막내까지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던 무렵 엄마가 한 마음공부
 
위녕, 새해가 밝았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구나. 힘들지? 말은 안 해도 네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엄마는 안다. 음, 어떻게 아느냐고? 모르겠다. 간단한 안부나 용건을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의 간단한 철자만 봐도 그게 느껴지더구나. 글자들이 모두 너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거 같아. 너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네 나쁜 일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눈치를 채고 네게 말을 거는 일도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지? 너도 이제 성인이고 모든 성인은 각자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단다.

정말 아팠는데, 그 아픔이 느껴지진 않아
그렇게 힘들어하는 너를 보고 있자니 오래전 내가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생각났어. 글쎄 얼마 전에 엄마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여성이 묻더구나.
“선생님 생애의 가장 힘든 시간을 대체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숨이 막힌 듯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내내 나는 내가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거나, 최소한 죽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냈는지 생각해보았단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강렬하고 놀라운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어쩌면 “그 고통이 가짜였고 힘들다고 죽을 것만 같다고 어쩌면 나를 속인 것이 아니었을까?” 뭐 이런 생각이었어.
일러스트레이션/ 이장미
 
아, 이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한 나도 깜짝 놀랐으니까. 그런데 이 생각을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러니까 ‘기억이 없다’는 거였어.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있었고 “그때 내가 많이 괴로워했다” 이건 사실이지. 그런데 이 기억은 있는데 그 고통이 실감나지 않는 거야. 얼마나 아팠다고, 정말 아팠어,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아픔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거였단다.
 
나는 아직도 너를 생각하면 너를 두고 가슴이 아팠던 거랑, 우리가 헤어져 살 때 네가 보고 싶었던 마음, 차마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이 숨이 막혀왔던 그리움과 네가 나를 힘들게 했을 때 배신감과 아픔을 기억할 수 있어. 그리고 아직도 그 모든 것을 네게서 느낀단다. 엄마가 7살 때 키우다가 잃어버린 강아지 메리하고 엄마가 지난여름 잃어버린 강아지 여름이하고 겨울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들을 사랑했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그런데 그녀가 물었던 다른 지나간 고통들은 생각나지 않는 거야. 고통의 원인, 경과, 진행 사항, 결과 등등을 다 기억할 수 있는데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말이야.

실제 심리학자들이 묻곤 하잖니? 당신이 10년 전에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그리고 그중에서 두려움이 현실로 닥친 것이 몇 개인가 말이야. 오늘 너를 사로잡고 있는 고통이 10년 뒤에도 지속되는 것일까? 정말?
 
그러자 그 혼란 속에서 한 가지 엄마가 했던 나름의 마음공부가 떠올랐어. 그러니까 그 무렵이었어. 엄마가 혼자 되고 너희 셋이 고스란히 내 앞에서 크고 있고, 막내는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엄마가 밤마다 소주 한 병을 놓고 ‘막내까지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그 무렵, 스치듯 읽은 어떤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한 구절이 떠오르더라고.
 
“감사하라, 더욱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 당신의 인생이 바뀌게 될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뭐라도 해야 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거 같아 시작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규칙을 하나 세웠어. 하루 종일, 늘, 더욱! 감사하긴 힘들겠으니 대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감사를 하자. 아주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를 꼭 하자.
 
 
맙소사! 얼마나 감사할 게 없는지…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 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러니까 일어나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눈을 뜨자마자 감사를 시작했어. 그런데 맙소사! 얼마나 감사할 게 없는지 말이야.
 
내 자신이 한심했지. 그토록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기도를 시작했더라면 정말 감사할 거리가 많았을 텐데 싶었지만 이미 늦은 것. (사람은 절대 가지고 있을 때, 편안할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아. 그래서 고통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길의 모퉁이를 돌게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장미
 
만일 네가 엄마의 말을 믿고 이 중얼거림, 이 독백, 이 기도를 시작해본다면 너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를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될 거다. 다섯 가지나 감사를 해야 한다니… 감사드릴 일이 정말 없었어. 당장 목청을 돋아, 이것도 없고요, 이것도 모자라고요, 이것도 잘못됐고요, 저것은 좀 없애주시고요, 저 사람은 혼 좀 내주세요, 뭐 이러고 싶었지.
 
그래도 했다. 그냥 해보자 싶었어. 이자가 어마어마하게 나가는 은행빚이 있고 너희는 속을 썩이고 떠나간 누군가는 시시각각 약을 올리듯이 속을 뒤집어놓는 와중에 이런 기도를 했던 거 같아.
 
“우선 제가 안 죽고 밤새 중풍도 안 걸리고 이렇게 멀쩡하게 일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하다보면 거실로 나오게 되어 있어. 때는 겨울이었어. 밖을 내다보면 아직 어둑한 거리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더구나. 그래서 두 번째 기도는 “이렇게 밖이 추운데 저희 집은 아주 따뜻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자는 방문을 들여다보고는 감사했다. “아이들도 밤새 아무 일 없이 잘 자고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이쯤 되면 정말 감사할 일이 없단다. 그래도 두 개가 더 남았잖아. 그래서 기도했지.
“어제 신문에 보니 북한이 핵을 가지고 난리를 치는 모양인데 밤새 핵전쟁이 안 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대체 이러고도 뭘 더 감사할 일이 있기나 한 걸까 끙끙하다가, “밤새 이 집이 안 무너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의식을 끝내곤 했단다. 천사의 인도 때문인지, 그 말도 안 되는 기도를 계속했다. 때로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지. 그런데 한 6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눈을 뜨자마자 중얼거렸어.
 
어떤 날은 열 가지 감사할 게 생겼어
 
“밤새 저를 이렇게 무사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목울대에서부터 명치를 향해서 무언가가 짜르르르 흘러내리더라고. 알아? 감동받을 때 가슴이 움직이는 그런 느낌. 이상하다 하면서 다음 말을 했지. “밖은 아주 추운데 저희 집이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메면서 내가 이 추운 날 따뜻한 데서 자고 일어났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해서 눈물이 흘러나왔단다. 그래서 그 사실에 대해 진심을 다해 감사했어.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지,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을 한 것도 별로 없는 주제에 내가 세상에 무얼 그리 많이 바라고 있었는지. 그리고 세상이 내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이 나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말이야.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감사를 할 일이 많아진 거야. 어떤 날은 다섯 가지가 넘어 열 가지가 되도록 감사를 했다. 그중에는 남들이 듣기에 아직 살아 있어서 감사, 뭐 이런 이상한(사실은 이게 정말 감사한 일인데) 기도 말고 누가 들어도 감사할 만하다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지. (이렇게 말하니 이게 무슨 주술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래 그러면 어떠니? 뭐 좋고 감사한데 그치?)
아직도 그날 아침의 감격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단다.
 
위녕, 힘들겠지만 속는 셈 치고 엄마의 말을 한번 들어볼래? 엄마가 했던 그 쉬운 방법을 한번 써볼래? 만일 6개월 했는데 효험(?)이 없다며 엄마가 100만원 준다, 라는 말에 엄마의 후배들이 여럿 이 방법을 시도했었는데… 결론은 100% 성공이었어. 그래서 그 독자에게 이야기했지.
 
“밤새 생각해보았는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열쇠가 있었다면 그건 감사였어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게 남은 것, 내게 아직도 주어지고 있는 것,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한 순간 고통은 힘을 잃었어요. 왜냐하면 남은 것이 잃어버린 것들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많았거든요 ”
 
위녕,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만일 네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너에게는 희망이 있는 거야.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도 보면 뜻밖에도 물 결정이 가장 아름답고 반듯할 때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때더라고. ‘사랑해’가 그다음이고 말이야.
 
가래떡을 구워 고추냉이 푼 간장에 찍어 먹어봐
 
그래서 오늘은 가래떡을 구워 먹어보자. 엄마가 새해에 가져가라고 몇 개 잘라준 그 평범하고 흰 떡. 약간 굳은 가래떡에 엄마가 전에 준 들기름을 살짝 발라. 없으면 참기름도 좋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구워도 담백하니 맛있어. 두꺼운 프라이팬에 구워도 좋고 그것도 없으면 가스불에 떡을 집게로 집어 이리저리 굽는다. 가래떡구이는 약간 타는 듯한 느낌이 오기 직전, 군데군데 둥그스러운 나무옹이 모양으로 누르스름한 게 있을 때 제일 맛있지. 이것을 이번에는 간장에 찍어 먹어보자.
 
놀랐다고? 응, 간장에 고추냉이나 겨자를 아주 살짝 풀고 거기에 이 떡을 찍어 먹어보려무나. 꿀이나 조청에 찍어 먹을 때의 진부한 맛이 아니란다. 다이어트도 되고. 오늘 요리는 너무 간편하지? 이걸로 끝. 그리고 긴 젓가락이나 꼬치에 이 가래떡을 꿰어 들고 뒹굴방굴 하며 책이라도 읽을까? 누구는 이런 태도를 홈스쿨링이 아니라 ‘홈뒹굴링’이라 하던데. 음, 아주 맘에 들어. 홈뒹굴링.
 
그렇게 하면서 물을 마실 때 물에게 속삭여보자.
“신선한 물아 고마워, 내 몸에 들어가 살도 빼주고 신선한 에너지를 내게 주렴” 하고.
그래 위녕, 새해엔 새로운 일을 만들어보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자, 오늘도 좋은 새해의 저녁!

[출처] 한겨레21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한겨레21

한겨레21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