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을 마무리하는 특별한 의식, 책례

우리 선조들은 책 한 권을 마무리할 때마다 정성껏 음식을준비해 나누어 먹으며 감사하고 자축하는 ‘책례’를 하였다. 책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글 박시전 | 사진 조병선 | 모델 강한 도움말 김경미 성남지역사회교육협의회 강사 소품협찬 밀크하우스

책례가 뭔가요?
책례(冊禮), 세책례(洗冊禮)라는 말은 어색해도 ‘책거리’란 말은 익숙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 ‘책례’는 무엇일까?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또 어떤 의식을 했을까? 책례
를 통해 옛 문화를 재조명해 보자.
선조들의 교육철학이 담긴 책례 우리 선조들은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등 한 권의 책을 떼고 나면 스승과 동문수학하던 벗들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것을 책례라 하는데, 세책례, 책거리 또는 책씻이라 부르기도 했다. 책씻이는 책을 다 쓰고 난 후 후학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깨끗이 손질한 데서 유래된 말로 그만큼 책이 귀한 시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책례가 있을 때면 스승은 자신의 바람이 적힌 글자를 봉투에 담아 제자에게 선물하였는데, 이를 단자수신(單字修身)이라 불렀다. 가령 게으른 학생에
겐 부지런할 ‘근(勤)’자를, 참을성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참을 ‘인(忍)’자를 적어 주었다. 이처럼 성적표가 아닌 글자를 써주는 데서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하
는 선조들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정성 담은 음식의 깊은 의미 책례에는 음식이 빠지지 않았다. 간단한 음식을 장만해 스승은 물론 함께 공부하던 벗들과 나누어 먹으며 감사를 표하고 자축하였다. 값비싼 진수
성찬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서로 나눠 먹을 수 있는 국수, 경단, 오색 송편과 같은 음식을 준비했다. 국수는 학문에 오래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겼으며 팥이나 콩, 깨 등의 소를 넣은 송편은 학문도 송편처럼 꽉 차라는 뜻에서 책례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속을 비운 송편을 함께 준비하기도 했는데, 이는 속을 비워 마음과 뜻을 넓게 다스리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사용해 색을 곱게 들인 오색송편은 우주만물의 조화로움과 오행의 진리를 상징하였다. 또한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인체의 오장육부
를 다스리고, 마음에 기운이 가득 차오르게 한다고 믿었다.

책례, 다시 생각해 보기
책례에는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 차원 높은 다음 단계로 들어선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요즘엔 흔히 ‘책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예전처럼 떡을 하기보다 한 학년을 마칠 무렵 학급에서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등약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책거리에서는 책을 찢거나 훼손하고 심지어 불태우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학기가 끝날 때면 쓰레기장에 책이 넘치기도 한다. 잘못된 책거리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자 학교에서는 학기가 끝날 때 교과서를 모두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여 공부한 책이니만큼 소중하게 간직하는 편이 좋다.

꼭 전통 책례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가족끼리 모여 조촐한 책례를 해보면 어떨까. 아이는 그간의 배움의 흔적인 책은 물론 그 시간까지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가족의 의미있는 의식으로 학년이 끝날 때쯤, 우리 가족만의 의미 있는 ‘책례’를 해보자. 거창할 필요는 없다. 선조들이 해왔던 것처럼 송편 등을 준비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려주는 것도 좋고, 굳이 송편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과 음료 위주로 다과상을 차리면 다. 그리고 1년 동안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자.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어려운 것을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축하해 주자. 가족의 작은 의식이자 이벤트로 부담없이 생각해 볼 것. 아이는 새로운 학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고, 부모의 관심과 격려를 통해 뿌듯함을 느낀다.

격려 카드 써주기 책례 때 스승이 제자에게 단자수신을 건넸듯, 아이에게 부모로서 바람이 담긴 카드를 써주면 어떨까. 유대인은 아이에게 처음 글자를 가르칠 때 과자나 사탕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배움이 달콤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베이킹이 가능하다면 ‘끈기’와 같은 글자과자를 만들어 주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다과상 차려보기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제대로 된다과상을 차려보자. 식탁에 테이블보를 깔고 집에 있는 다기 세트를 활용해 근사한 티타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누자.
잔잔한 음악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1년 동안 공부하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제일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지, 어떤 친구를 사귀었고 학교생활은 어떠했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