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여기에 네 취향은 어디 있어?”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열었던 도자기 공방에 동기들을 초대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오랜 시간 숨겨왔던 고민을 단숨에 들켜 버린 것만 같아 순간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니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가?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흐릿한 개성과 모호한 취향은 이를 악물고 외면했던 내 치부였다. 나조차도 내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 공간에 취향이 묻어났을 리 만무했다.

공간은 빈티지한 우드톤 소품으로 가득했고, 그와 어울리는 약간은 촌스러운 꽃무늬 커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공방을 함께 했던 친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공간과 어울리는, 빈티지를 좋아하는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갈색톤과 꽃무늬 조합을 즐겨했다. 반면에 나는 늘 청바지에 검은 티(나의 언니는 그것을 스티브 잡스룩이라고 불렀다), 에코백을 즐기는, 취향에 대한 큰 고민이 없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공간에 대한 기획을 할 때도 그녀의 취향이 곧 내 취향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던 것 같다.

문제는 함께 했던 공방이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우리는 문을 닫기 몇 달 전, 앞으로 무엇으로 벌어 먹고살 것인가에 대해 짧은 회의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를 다니는 우리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고, 계속해서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의 결과, 친구는 다른 사람과 사업을 조금 더 시도해 보기로 했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결정했다. 그녀로부터 독립해 혼자가 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을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역시 ‘그림’을 선택했다. 정확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다. 입시 미술 3년, 미술학원 아르바이트 6년, 거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숨 쉬듯 그림을 그려 왔기 때문에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단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작은 공간에서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을 찾다가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와 펜슬을 꺼내 앉았다. 재료도, 시간도, 능력도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만 하다가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눈에 처음 보이는 것을 그렸다. 눈이 많이 내리던 해의 겨울이라 눈이 소복이 내린 나무를 그렸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SNS에 올렸다. 처음에는 이 초라한 것을 남들 앞에 보여주기가 너무 민망했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은 충분히 프로답지도 않았을 뿐더러, 정해진 콘셉트도, 의미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밑천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더 부끄러웠다. 자꾸만 삭제하려는 내 손가락을 간신히 붙잡고 차라리 다음 그림을 빨리 그려서 눈에 안 보이게 하자는 마음으로 다음 그림을 이어갔다.

그렇게 업로드하고 외면하기를 1년이 지나 이제는 그림이 제법 쌓여가면서 자주 쓰는 색깔이 보였고,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채색보다는 다양하고 선명한 색깔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네모반듯한 패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는 동물들과 열매, 꽃을 좋아하고, 나를 둘러싼 주변에 늘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림은 내 취향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취향에 기대어 가려고만 했었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유행을 따르거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성이 강한 사람에게 기대어 내가 모호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만을 바랐다. 완벽하게 혼자가 되고 나서야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나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취향 홀로 서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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