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 도예가

자연의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아름다운 형태, 질감이나 색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은 물론이고, 천천히 그러나 참 부지런히도 흘러가는 자연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이 마음에 더없는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는 너무나 다채로운 색과 형태와 질감이 존재한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꽃과 가을 하늘의 눈부신 푸른 빛, 곤충들의 흥미로운 생김새, 또 까슬한 나무껍질과 폭신한 버섯이 산책하는 발걸음을 늘 흥겹게 한다. 이 다채로운 산책길 여기저기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가만히 멈춰서 바라보면 비로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선(線)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구름의 곡선, 유려하게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능선, 해 질 녘 반짝이는 잔물결, 일자로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 호를 그리는 갈대, 대칭을 이루는 나뭇잎의 잎맥, 개미가 줄지어 지나가는 길의 형태까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모하는 풍경들 덕에 나의 산책은 지겨울 새가 없다.

작업실로 돌아와 자연이 만든 선을 흙 위로 옮겨본다. 얇고 길게 밀어낸 흙을 기물 위에 붙여나가거나, 혹은 물레 성형으로 만든 정형의 기물을 꼬집어 변형하며 나만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인 또 다른 선(禪), 즉 일종의 명상과 같다. 기억에 새긴 풍경을 더듬어 나가며 조용히 오랜 시간 손을 움직이는 명상. 작업이 주는 위안에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이다.

평가와 비교, 판단과 비난이 뒤섞인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태고부터 그저 존재해 온 자연 속에 머물다 보면 선(善)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식물들을 관찰해 보면 아주 규칙적이고 부지런히 각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울이 오면 아쉬움 없이 잎을 모두 떨구는 모습까지. 그런 자연에서는 악함의 반대 개념이 아닌, 그리스 철학에서의 아레테(aretē)처럼 제 일을 올바르게 훌륭히 해내는 선함이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선(善)은 그저 착한 것이 아닌 ‘옳은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에 있다. 옳은 방식에 정답은 없다고 해도 오답은 분명히 있다. 옳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의 소중함을 잘 잊어버리고 특별한 하루를 꿈꾸는 일이 많지만, 우리 삶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공예는 우리의 일상과 연관된 분야이다. 늘 생활하는 공간에서, 매일 사용하며, 항상 같은 위치에서 시선이 닿는 사물들. 그러한 사물을 제작하는 나의 하루 역시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적이다. 일상에서 좋은 사물들을 만들어 나가며 올바르게 제 역할을 하려 노력하는 것, 이게 내가 추구하는 선함이다.

도자 작업의 특성상 작업은 흙을 성형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민한 성질을 가진 백자 소지가 갈라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건조하고, 건조된 기물을 초벌 소성한다. 초벌 기물에 유약을 시유하고 1,280도 고온에 재벌 소성한다. 두 번의 소성을 거친 기물을 연마하고 나면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과정 안에서 한 단계라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 소홀함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남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바로 이전 단계가 아닌 최초의 성형 단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선(善)을 쌓아가듯 모든 단계에서 올바르게, 곧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처음 자연에서 본 풍경처럼 좋은 기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는 한번 고온에 소성되면 다시 썩거나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삼국 시대에 가라앉았던 배에서 해양 유물을 건져 올리면 놀랍도록 온전한 모습의 도자기가 발견되는 것은 대단하지만 동시에 슬픈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태어난 이 행성에 반영구적으로 남는 사물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더 잘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완성도 높은 사물을 만들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오래 사용된다면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할 테니까. 이것이 공예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손끝을 통해 명상하듯 추상적 형태로 만들어 낸 기물이 자연의 선함을, 그 아름다운 선들을 담아내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하루를 풍요롭게 하는 사물을 더 아름답게, 더 잘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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