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공간 과몰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두운 언덕길에 쏟아지던 노랗고 따스한 빛이다. 작년 봄, 나는 친구 권누리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첫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혜화역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산책했다. 우리는 첫 책이 나왔다는 엄청난 사실에 압도돼서 계속해서 책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사실 나만 흥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리는 나보다 훨씬 의연한 편이니까. 책 얘기를 나누며 어둑한 언덕길을 오르던 중, 우리는 작은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빛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앞으로 다가갔다. 

소품 가게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흰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문의 창 너머로 정연 하게 진열된 책들이 보였다. ‘여기에 이렇게 예쁜 독립서점이 있었다고?’ 우리는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감탄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텅 빈 서점의 조명 아래 놓인 책들, 그다음에는 책장 군데군데 손글씨로 적힌 작은 메모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 소개글인 줄 알고 읽어본 메모는 책보다는 서점을 소개하는 문구에 가까웠다. 메모를 통해 ‘공간 과몰입’에 대해 알게 된 정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방에는 책의 뒷표지를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다. 그래서 손님들은 책 표지 대신 서점지기의 추천사를 읽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이미지가 아닌 글에 매혹되어 책을 구매하길 바라는 서점지기의 뜻이 담겨 있다. 둘째, 서점지기에게는 라이카 카메라가 있다. 셋째, 서점에서 “과몰입 도전!”을 외치고 스마트폰을 보지 않은 채 20분간 책 읽기에 성공하면 해당 도서를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책방에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메모들이 넘쳐나서 작은 공간임에도 충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책방을 구경하는 동안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 하나 더 있다. 책방 한쪽의 반투명 레이스 커튼, 정확히 말하자면 커튼 너머에 있는 것이 분명한 서점지기의 존재였다. 커튼은 손님들이 편안하게 책을 구경하게 하기 위한 배려인 듯했고, 덕분에 우리는 정말로 마음 놓고 책을 고를 수 있었다. 계산할 때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자 무려 두 명의 서점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커튼을 너무 확 열어젖혔나요?” 내 질문에 그들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답했다. 책방을 연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부연 설명이 반가워 우리는 서로를 소개했다. 나는 누리가 첫 책을 낸 지 두 달이 된 시인이라고 했고, 누리는 나를 첫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소설가라고 소개해주었다. 새내기라는 공통점을 찾은 우리는 서로의 시작을 응원했고, 헤어지기 전 서점지기들이 카메라로 누리와 나를 찍어주었다. 

그날 나는 공간 과몰입에서 《태풍이 지나가고》와 《만두》를 샀다. 집에 와서 두 권의 책을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며 그날을 떠올린다. 종이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담긴 공간의 공기를 느낀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어떠한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에게도 행복을 주는구나, 생각한다. 첫 책을 낸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공간 과몰입’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마어마한 힘이 되어줄 듯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그러니까 사랑의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