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숲을 거닐다-4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정희태, 미술칼럼니스트

인구가 500명이 되지 않는 도시이지만,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청명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을 수놓고 있는 하얀 구름, 그 아래로 피어난 푸릇푸릇한 풀들, 그리고 색색이 꽃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시골 마을 지베르니(Giverny)입니다. 인상파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살아갔고 생을 마감했던 장소죠.

클로드 모네는 1840년 11월 14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캐리커처를 그려서 판매했을 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죠. 판매 수완도 남달랐던 그는 시간이 지나 그림 한 점을 판매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위해 힘든 시간을 버텨야만 했습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한 초반에는 판매가 부진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은 집세를 낼 돈이 없어서 작업하고 있던 그림마저 집 주인에게 빼앗겨 버리기도 하죠. 

무엇보다 부인 까미유(Camille Monet)가 둘째 아들 미셸을 낳고 병약해졌지만 그녀에게 약을 지어줄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합니다. 결국 모네는 43살 때 퇴거 명령을 받게 되면서 파리를 벗어나 한적한 지베르니에 안착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86세의 나이로 사망하는데 인생의 절반인 43년간은 힘겨운 삶을 살아갔지만 지베르니에 정착한 뒤 펼쳐진 43년 동안의 인생은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장소가 바로 지베르니였던 거죠.

그가 그곳에서 그려낸 그림들을 보면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기온은 어떠했고, 햇살의 강도는 어땠는지, 바람은 어떻게 불고 있는지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죠. 그는 ‘빛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화가로, 변화하는 빛과 풍경을 빠르게 잡아내어 순간을 잘 포착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그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눈은 예리하고 빨랐으며 거기에 더해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지 않고 바로 붓질을 하는 것인데, 붓 터치는 한두 겹으로 칠해 마무리함으로써 그림을 빠르게 그려내는 기법이죠. 그래서 그는 변화하는 빛과 풍경을 순간적으로 잘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림 속 풍경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에 비해 더 산뜻하고 경쾌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는 지베르니에 정착해 손수 정원 구석구석을 꾸며냅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은 다르지만, 그의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었기에 늘 다채로운 색들의 꽃이 만개했고, 그만큼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봄을 알리는 때가 오면 튤립과 벚꽃으로 가득 찼고, 이후에는 보랏빛의 철쭉과 아이리스가 정원을 가득 메우게 됩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붉은 제라늄이 피어나고 웅크렸던 수련들이 꽃잎을 활짝 피워 청초한 자태를 드러내며 물의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모네의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팔레트 위에 펼쳐진 물감의 색들을 정원에 풀어놓은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죠. 그가 지베르니 정원의 꽃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유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내 장례식은 간단하고 종교적이지 않아야 한다. 일반인처럼 묻어주고 내 가족만이 관 주변에 서 있어야 한다. 꽃이나 화환은 안 받을 것이다. 그것은 아주 헛된 명예이니라. 이런 일에 내 정원의 꽃을 꺾는 일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했던 화가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에서 그의 정원을 실제로 방문하게 되면 넋을 잃고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저 행복함에 휩싸여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취할 수 있게 되는 장소이죠. 직접 이곳을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면서 바쁜 일상 속 잠깐의 휴식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1.  <지베르니 예술가의 정원>, 1900년, 81.3×92.6cm, 캔버스에 오일,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2.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1895년, 81.5×92cm, 캔버스에 오일, 뷔블레(E.G. Bührle) 재단 컬렉션, 스위스 취리히. 

3.  <지베르니 모네 정원의 중앙 산책로>, 1902년, 89,5×92,3cm, 캔버스에 오일,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빈. 

4.  <수련>, 1910년, 150×197cm, 캔버스에 오일, 마르몽탕 미술관, 프랑스 파리. 

5. <노르웨이 식 나룻배(지베르니의 나룻배)>, 1887년, 98 x 131 cm, 캔버스에 오일,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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