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6 GT는 잘 맞는 슈트에 강한 근육과 심장을 가진 멋진 남자 같다

기아 EV6의 고성능 버전인 EV6 GT는 국산차 역사상 가장 빠른 차다. 기존 EV6 대비 성능을 크게 높인 모터와 고출력 배터리를 조합한 결과, 0→시속 100km 가속을 단 3.5초만에 끊는다. 그동안 3초대라는 숫자는 다른 나라 차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EV6 GT 모델은 사륜구동이 기본이고, 앞뒤 모터 힘을 더하면 585마력에 토크 75.5kg•m의 성능을 낸다. 제원만 보면 값비싼 수입 스포츠카를 무색케 한다. 또한 저중심 플랫폼, 강한 차체 강성, 단단하고 안정적인 전자 제어 서스펜션은 이 차의 드라이빙을 발군의 한계치로 이끈다.

이러한 사전 정보를 안고 EV6 GT를 만났다. 검정색 보디컬러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차돌 같이 단단한 느낌이다. GT라고 해서 외관이 기존의 EV6와 비교해 한눈에 달라보이는 건 아니다. 

GT라는 로고가 차량 후면의 오른쪽 아래에 작게 붙어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1인치 휠에 255/40 사이즈의 고성능 미쉐린 타이어도 보인다. 4개의 피스톤이 장착된 고성능 캘리퍼는 자랑하듯 형광색을 발한다. 참고로 보통 차량 캘리퍼의 피스톤은 싱글이다. 

전면 하단 범퍼 양쪽 끝에 세로로 금속 선이 한 줄 씩 있고, 후면에도 범퍼 부분의 양쪽 끝에 세로 두 줄의 반사판이 있다. 그리고 하단 중앙에도 다섯 줄의 세로 램프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외관상에서 아주 작은 차이 일 뿐 이외 GT 만의 특별히 강조된 차이점은 찾을 수가 없다. 마치 의도적으로 힘을 감춘 영화 속 특수요원 주인공을 떠올리면 된다. 

문을 열고 실내를 보는 순간 제일 먼저 버킷 시트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동작을 수동으로만 지원하는 GT의 버킷시트 디자인은 멋지다. 목 부분에는 포르쉐라면 추가 금액을 받았을 것 같은 GT 로고도 큼직하게 박아 놓았다. 간결하면서도 스포츠카 느낌을 물씬 풍긴다. 

앉아보니 시트의 높이가 꽤 낮다. 시트 재질과 디자인은 몸을 안정되고 편안하게 감싸주는데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상태에서 눈높이가 낮다 보니 핸들 위치에 문제가 좀 있다. 앉은 자세에 맞추면 핸들이 계기판을 가리고 계기판에 맞추면 붕 뜬 느낌이다. 필자는 핸들을 좀 낮게 쓰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핸들의 적당한 위치를 찾기 위해 여러번 포지션 바꿔야 했다. 

스티어링 휠 모양은 기존 EV6와 같으나 오른손 엄지로 작동 할 수 있는 위치에 GT 스위치가 달려 있다. 스포트 모드 변환 없이 단숨에 차량을 뛰쳐나가게 할 수 있다. 직관적이고 즉흥적이다. 

조수석 오른쪽에서도 역시 GT 로고를 찾을 수 있다. 대시보드 빗살무늬는 미래적 느낌을 더한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등은 기존 모델과 같지만 검정 스웨이드 재질의 인테리어가 차별적 요소다. 이런 감각이 무척 마음에 든다.

차를 몰고 양화대교, 강변북로를 지나 자유로를 향했다. 진동과 소음은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점차 조용한 전기차의 특성에 익숙해져 가다보면 내연기관 엔진을 사용하는 차는 점점 불편해 질 것 같다. 회생제동을 사용하는 i-페달은 작동감이 이질적이지 않다. 편안한 느낌으로 운전할 수 있다. 서스펜션에서 조금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일상에서 쓰기에 무리가 없고 오히려 이런 묵직함이 좋다. 

전반적으로 운전이 편안하다. 고성능 퍼포먼스형 차라는 생각에 너무 긴장을 했나보다. 선루프도 열고 보통의 세단 혹은 SUV 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가을 바람을 가르며 운전 했다. 

차들의 흐름이 뜸한 구간에서 GT 버튼을 누르니 순간적으로 훅 하고 튀어나간다. 내연기관의 강력한 터보 이상이다. 풀 액설레이터를 시도하자 마치 공중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에 몸을 맡긴 듯 고개가 젖혀진다. 585마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전기차이니 만큼 터보 랙 같은 지체 반응도 없다. 

사운드 제네레이터를 켰다. 메리디안 오디오에서 만드는 다이내믹 사운드로 제법 고성능 스포츠카를 다루는 기분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벗어나 일반 국도의 코너를 굽이굽이 돌아나가 본다. 주행 모드와 도로 상황에 따른 전자제어 서스펜션 반응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하지만 낮은 중심 설계와 강성이 보강된 차체는 꽤 높은 속도의 코너링도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소화해 낸다.

한참을 달리고 숨을 고르며 주행 모드를 노멀과 에코로 번갈아 바꿔 보았다. 사륜구동이 해제되며 뒷바퀴 모터만 가동하는 후륜구동으로 차체 제어가 이뤄진다. 드라이빙 감각도 보통의 차와 같이 편안해진다. 사실 GT 모델은 일반 모델에서 쓰는 후륜 모터를 전륜으로 가져오고 후륜에 더 고성능 모터를 장착한 형태이다.

EV6 GT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차다. 그러나 다양한 도로에서 달려본 후 든 느낌은 여러 가지 요소들, 예를 들어 차량의 세팅이나 높이, 디자인, 서스펜션, 종합적인 성격 등에서 본격적인 스포츠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태생은 잘 맞는 수트를 차려 입고 예절 바르며 마음이 따뜻한, 그러나 누구도 쉽게 눈치 채지 못할 강한 근육과 심장을 가진 그런 멋진 남자와 같다.

이런 고성능 차가 내 일상에 왜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다 문득 일반 EV6와 가격 차이가 채 800만 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도의 추가 지출에 이렇게 뜨거운 심장을 가진 차라면…, 그렇다면 안될 거 없지! 와이 낫?(Why not?)

기아 EV6 GT

가격 7200만 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695×1890×1545mm 휠베이스 2900mm 무게 2160kg
최고출력 576마력 최대토크 75.5kg·m 변속기 자동1단 주행거리 342km
배터리 77.4kWh / 리튬이온 서스펜션(앞/뒤) 맥퍼슨 스트럿 / 멀티링크
브레이크(앞/뒤) 모두 V디스크 / 디스크 타이어(앞/뒤) 모두 255/40 R21

[출처] 오토카 Autocar Korea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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