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안학교 서머힐에서 보낸 9년 채은씨의 서머힐 라이프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꿈을 찾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서도 불안함은 찾을 수 없다. 자신을 일컬어 왜 한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서머힐리언’이라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일반적인 교육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서머힐만의 교육이 채은씨에게서 읽힌다.

1990년대 초반 즈음으로 기억된다. 공부 따위는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놀고 싶으면 얼마든지 놀아도 되는 학교를 소개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대안학교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학생들이 나체 수영을 하는 장면은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 방송됐지만 지금까지 ‘서머힐 스쿨’이라는 학교 이름과 함께 기억이 날 정도로 강렬했다.

“지금도 서머힐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알몸 수영이죠. 예전의 서머힐리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알몸 수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것을 불편해하는 학생들을 위해 따로 시간을 만들었어요.”

채은씨(23)는 나체가 아닌 알몸 수영이라고 표현했다. 좀 더 생생하게 서머힐의 생활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방송을 통해 처음 한국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서머힐은 시청자들에겐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해외 토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인 졸업생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몸가짐이 단정하게 느껴지는 그녀에게선 이른바 외국물 좀 먹었다는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 서머힐 졸업생에 대해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롭다 못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엉뚱하고 기괴한 말과 행동을 할 거 같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서머힐 졸업생 채은씨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저는 서머힐 출신인 게 자랑스럽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에요. 영국 내에서도 서머힐에 대한 선입견은 있어요. ‘문제아들이 가는 미친 학교’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무척 동경해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해요.”

채은씨도 고등학교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으로부터 “서머힐은 좀 미친 곳 아닌가?” 하는 말을 듣고 긴장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서머힐 출신임을 밝히길 꺼리는 졸업생도 제법 된다고. 좋든 싫든 많은 선입견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머힐, 모두에게 천국은 아냐
서머힐 밖의 사람들은 서머힐을 그야말로 학생들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내키지 않는 수업은 안 들으면 그만이고, 숙제도 없다. 원한다면 몇 날 며칠 마음대로 놀 수 있다. 하지만 채은씨는 모두에게 천국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저도 서머힐 교육에 불만을 가졌던 적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하는데 정말 불안했거든요.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도 가고 싶은데 제가 충분히 공부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렇게 해왔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일반 학교 학생보다 공부 양이 적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등학교 입학시험(서머힐은 고등학교 1학년까지만 운영된다)을 앞두었는데도 아무도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으니 오히려 불안했다고 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다른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하고 서머힐에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은 비단 그녀만의 것은 아니었다.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다양한 이유로 그 천국을 스스로 떠나는 학생이 많았다. 서머힐의 교육이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일반 교육 시스템을 선택하기도 하고, 교육 및 시설이 불충분하다고 여겨 부모가 그만두게 하기도 한다. 채은씨와 함께 서머힐을 졸업한 한 일본인 친구는 “서머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고.

“일반 학교에 다니다 서머힐에 오는 친구, 서머힐에 다니다 일반 학교로 가는 친구, 또 서머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친구도 있어요. 누구의 결정도 틀린 건 아니죠. 서머힐은 자신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내리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서머힐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이야기와 소문이 있다. 신비한 곳이란 동경부터 형편없다는 평가절하까지 말이다. 하지만 졸업생 채은씨는 다 다르면서 다 똑같다고 했다. 시스템이 갖춰진 학교라 해도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서머힐이라 해도 스스로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열심히’ 노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며 웃어 보였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워
공부에 대한 불안감도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금세 사라졌다. 몇 개 과목에서 절대적인 공부 양이 부족했을지 몰라도 ‘스스로’ 공부해서 바로 보충할 수 있었다. 채은씨는 되레 일반 학교에 와서 서머힐 교육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니, 선생님의 잔소리가 무척 심한 거예요(웃음). 제가 볼 때는 학생들을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했니, 저건 했니 하고 끝없이 다그치고 확인하셨죠. 하지만 저는 칭찬을 받았어요. 스스로 알아서 다 한다고요.”

너무 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생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는 곳이 서머힐이다. 이제 좀 공부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야 하는 곳도 서머힐이다. 서머힐에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그녀는 서머힐에 대한 잘못된 오해 중 꼭 한 가지를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바로 공부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아예 공부를 안 하는 친구도 있긴 하지만(웃음),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것이라 가르치진 않아요. 실컷 놀다 보면 심심해져요. 그러면 제 발로 선생님을 찾아가게 돼요. 뭐라도 시켜달라고요. 그럼 선생님은 ‘책 읽을래?’ 하고 저희 의견을 물으시며 대화를 시작하세요. 보통 그게 자연스럽게 공부로 이어져요.”

채은씨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서머힐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별세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녀도 자신이 서머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하진 않다고 했다. 현재 대학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고 있는 한국 학생을 예로 들며 “‘앞으로 뭐 하지?’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가치는 똑같다”라고 했다. 그래도 서머힐리언 채은씨에게 꼭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었다. 서머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이요. 그곳에서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확실하게 익혔어요. 지금 당장은 구체적인 꿈도 없어요. 하지만 불안하지 않아요. 전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채은씨가 쓴 책에는 서머힐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기초 체력을 기른 곳이라 표현돼 있다. 행복해지는 기초 체력이라…. 왜 공부를 하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서머힐은 지극히 평범한 학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머힐 스쿨은…

 
영국의 교육학자 A. S. 닐이 1921년에 설립한 실험적 대안학교. 학기 중에는 방문객을 받는 날이 따로 있다. 서머힐 오피스에 이메일(office@summerhillschool.co.uk)로 직접 방문 날짜를 문의하면 된다. 채은씨의 어머니도 미리 학교를 방문했었다고. 입학 조건과 과정 만 12세 이하의 학생만 받는다.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summerhillschool.co.uk)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비 정확한 학비는 서머힐 오피스에 이메일이나 전화로 의뢰하면 알 수 있다. 기숙사비 포함 학기당 4천 파운드 정도로 알려졌다. 서머힐은 장학제도가 없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일본어 등 특수 과목과 소풍 같은 기타 특별활동비는 학기 말에 학비와 함께 계산된다.

[출처]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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