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의 선물 " ㅡ 가족의 힘 / 박기숙, 사진작가




작년 이맘때, 나는 며칠을 울었다. 원래 나는 잘 울어서 드라마를 보다가 배우보다도 먼저 우는 일이 다반사고, 슬픈 곡조의 노래는 울어서 끝까지 부르지도 못한다. 거기다가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면 장소를 불문하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서 그런 내가 너무나 창피할 정도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보다보다 이제는 아예 눈물의 여왕으로 인정해주는 편인 것 같고, 나는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울지 않도록 해달라고 자주 맘속으로 기도를 하는 편이다.
그때는 사람 많은 병원에서 부모님을 바라보다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노견(老犬) 슬기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항상 젊을 것 같던 엄마 아빠가 어느덧 칠순을 다 넘기셨는데, 슬기까지 나이가 들어 아픈 것을 생각하니 부모님 걱정에, 나이도 많은 슬기가 얼마나 아플까 하는 걱정에, 끝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마흔이 넘은 내 나이는 잊어버리고 조카가 옆에 있는데도,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날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시고 나는 집에 가서도 밑도 끝도 없는 슬픔에 계속 울고 또 울었다. 이틀째 울던 저녁, 갑갑한 마음에 밤 산책을 나갔다가 함박눈을 맞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맘속에서 무지개가 뜨는 느낌이 들면서 그 무겁던 슬픔이 한결 가벼워졌다. 3일째 되는 날 나를 걱정하던 새언니가 전화를 했다. 부모님 계신 시골에 가자고…. 내가 심하게 울던 날 슬기가 하늘나라로 갔던 것이다. 나 말고도 모두 슬펐을 텐데 유독 크나큰 슬픔에 빠져버린 나를 가족들은 오히려 걱정해주었다. 그날 밤, 슬기가 내게로 왔다 갔다.
슬기는 내가 이십 대 후반 무렵 집으로 데려왔던 강아지다. 슬기는 그 이후로 열여덟 해를 너무나 여유로운 천성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성격이 천방지축이라고 아버지가 ‘방축’이라고도 부르셨는데, 식구들에게 귀염을 많이 받았었다.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우린 모두 슬기가 보는 앞에서 뭐 하나 먹지를 못했다. 입만 조금 움직여도 먹는 걸 내놓으라고 소리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슬기를 데려올 때, 슬기가 시추 경연대회 우승자 혈통이라는 소리를 얼핏 들었었다. 보통의 다른 시추들보다 몸집이 상당히 컸고 짖는 소리도 컸다. 먹을 걸 달라고 짖는 소리는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여서, 가끔 엄마한테 신문지로 맞기도 했다. 맞아도 쉽게 물러섬이 없어서 우리는 우아하게 식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다. 먹을 것 앞이라면 얼마나 짖어대는지, 심지어는 오이로 맞은 흑역사(?)도 있다. 채식을 좋아해서 오이를 달라고 너무 조르다가 말이다. 또 청국장에서 별명을 따 ‘국장님’이라고도 불렸는데, 슬기의 찐한 청국장 같은 체취 때문이었다. 이 향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나는 국장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었다. 또 어디 그뿐일까? 잠을 자면서 코는 어찌나 고는지. 하루 종일 자는 시간이 많은 슬기의 따르릉 코 고는 소리는 무미건조한 시간의 활력소였고, 예쁜 눈을 털로 가리고 우직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자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시골에 가 보니 마당에 예쁜 슬기 무덤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겨서 방축이가 우리 가까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어서 슬기 옆에 놓았다. 엄마가 슬기는 하늘나라 가기 바로 전에 저녁으로 채식을 든든히 먹고 떠났다고 하셨다. 국장님의 장례식에 우리 가족은 이상하게도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놀고 있었다. 거기다 슬기처럼 아름다운 함박눈이 내렸다. 우리 모두는 그 눈 위에서 지치는 줄도 모르고 다 같이 눈썰매를 탔다.
그날 쏟아낸 눈물로 슬기를 즐겁게 추억할 수 있었다. 지구에 온 모든 숨 쉬는 생명체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받아들이려나 보다. 즐거운 기억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슬기가 주고 간 선물인가 보다. 좋았던 기억이 슬픔을 이길 수 있도록 말이다. 슬기는 슬기답게 멋지게 살다 갔다. 나도 나답게 멋지게 살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과 마르고 닳도록 즐겁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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