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빗장을 열고 내일을 빚다" ㅡ아름다운 人터뷰 / 마이클리, 뮤지컬 배우


보이지 않는 벽들에 가로막힌 한 남자가 있다. 우체국 공무원인 그는 함몰된 일상의 시각(時刻)에 갇혀 규격화된 시각(視覺)으로 살아간다. 별로 특별하진 않아도 만족할만한 일상의 한 줄기로 흘러가던 어느 날,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이 생기면서 그는 ‘보통’을 벗고 ‘특별함’을 입는다. 일상과 비일상의 공간을 자유로이 활보하게 된 그는 바로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Le Passe Muraille>의 ‘듀티율’이다.
이러한 보통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 그 경계허물기의 층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리(41)의 삶의 물길질이 떠오른다. 현실과 허구에 각각 존재하는 두 인물의 교집합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뉴욕 브루클린 출생의 마이클 리는 의사인 아버지와 형의 뒤를 따라 명문 스탠퍼드 의대에 진학했지만, 의사가 아닌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음악과 운동에까지 두각을 나타내며 소위 ‘엄친아’로 불려온 그에게 있어서 ‘보통’이라는 단어는 어떤 빛깔, 어떤 질감으로 다가올까.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동네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는데, 그 ‘다름’이 남과 구별되는 특별함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평범하지 않게 보시지만, 의사 친구들 중에서는 배우가 배우들 사이에서는 의사가 특별한 것처럼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즉, 특별함과 평범함 모두 제 모습이죠. 만일 모두가 특별하다면 이는 곧 평범함이 되듯, 보통이라는 말로 개개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어요. 누구나 각자의 재능을 가진 특별한 존재니까요. 음양의 조화처럼 균형이 중요한 거죠.”
1995년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하여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미스 사이공><렌트><노트르담 드 파리><벽을 뚫는 남자>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각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자신의 현재시제를 ‘타인에 대한 감사’와 ‘운’으로 대신했지만, 그 멋쩍은 미소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부풀어 오른 꿈의 무게와 온도를 견뎌낸 시간, 동양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가 담겨있었다.
“사실 동양인이 좋은 배역을 맡으려면 열린 사고를 가진 좋은 연출가를 만나야 해요. 저 역시 그런 분을 만나서 지저스(예수) 역으로 캐스팅 될 수 있었죠. 일단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재능 있는 배우들로 넘치기 때문에 기회를 얻기가 굉장히 힘드니까요. 수많은 오디션이 있지만 ‘yes’보다는 ‘no’가 태반이거든요. 결국 실력 너머로 운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미스 사이공>(2006) 이후 7년만인 작년부터 한국 무대에 설 기회가 늘어났고, 특히 지난 하반기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와 <벽을 뚫는 남자>를 병행하면서 체력적·심리적으로 고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툰 한국어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에 각 노랫말에 담긴 단어, 문장, 뉘앙스, 맥락 등을 왜곡시키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공부하고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오롯이 ‘그랭구아르’와 ‘듀티율’의 언어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내고야 마는 집념과 집중력, 그리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발현된 지점이었다.
“공연을 통해 연기와 한국어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감사하죠. 더 좋은 배우가 되라는 선물을 받은 느낌이에요. 새로운 발견이었구요.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전혀 다른 개성의 인물을 표현하는 재미도 컸어요. 넘버(노래)는 ‘듀티율’이 훨씬 어려웠고, 인물 분석은 ‘그랭구아르’가 더 힘들었어요. 듀티율은 일상 속 인간으로서 저와 닮은 점이 많았지만, 극의 안팎을 드나드는 시인이자 스토리텔러인 그랭구아르는 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쉽진 않았어요.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서 인물을 창조했죠. 이럴 때일수록 연출가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다행히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연출가를 만나서 헤매진 않았어요(웃음).”
삶의 지문에 묵묵히 자신만의 뮤지컬 역사를 새겨온 그는 “뮤지컬은 인생의 전부이고, 인생은 뮤지컬”이라며 20년의 시간을 일축했다. 최고의 예술은 다채로운 인생의 무늬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듯, 관객들은 뮤지컬을 보며 자신을 반추할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배우들이야말로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따뜻한 사람들이에요. 스탠포드 친구들과는 달리 배우 친구들을 만나면 더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거든요.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운동과 락 음악을 좋아할 정도로 활동적인 면도 많고,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아해요. 결국 좋은 인성을 지녀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거죠.”
게리 올드만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처럼, 관객들에게 오직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의 잔상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이클 리. 눈앞의 실패와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의 제4막을 활짝 연 그의 무대는 앞으로 어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꿈들로 채워질까.
“아내와 두 아이를 비롯한 모든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죠. 한국 무대에도 계속 서고 싶고, 기회가 되면 라는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 특유의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연출가로서의 꿈을 갖고 스토리도 쓰고 있는데, 언젠가 꼭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음, 별로 대중적인 구상은 아니지만요(웃음).”
듀티율이 존재와 사랑에 대한 철학을 전하고 양각의 벽화로 남았듯, 무대 안팎에서 타인과의 관계의 벽을 뚫고 공존과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 그는 앞으로 어떤 가면으로 관객의 마음을 열어젖힐까. 그 특별한 가면을 쓴 보통 남자의 변신이 사뭇 기다려진다.


글. 사진/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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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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