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 디자인] 건축 디자인의 총아, 사옥 디자인은 어떻게 진화했나?

현대 도시 건축 최고의 총아는 단연 사무 빌딩이다. 전 세계 어느 도시나 핵심 지역은 하늘 높이 치솟은 사무 빌딩이 장악하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 역사상 사무 빌딩처럼 개별 규모가 큰 것도, 이처럼 단숨에 많이 만들어진 아이템도 없었다. 하지만 사무 빌딩(또는 사옥 건축) 디자인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편이다. 내부는 사무 업무의 특성상 별다른 차이가 없다. 결국 승부처는 외부뿐인데, 건물 형태가 네모꼴 콘크리트 구조체일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 실로 제한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디자인하기가 더 어렵다. 구조가 그대로 디자인이 되는 한계 속에서 기업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옥 디자인은 검증된 몇 가지 패턴의 변주와 재생이 반복됐다. 하나는 외부를 장식해 존재감 드러내기, 또 하나는 절제된 디자인으로 무난하게 하기다. 이 두 가지 흐름이 사옥 디자인을 이끌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업 문화와 아이덴티티를 증명하는 사옥 디자인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가치관을 가장 명징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옥은? 기업의 가치관을 실존적으로 증명하는 결정판이다. 사옥은 기업의 철학, 기업의 조직 문화, 기업의 아이덴티티 등을 보여주는, 자본과 시간이 투입된 물리적 존재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사옥을 디자인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CCTV처럼 직원과 공간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독특한 사옥 디자인으로 유명한 구글은 회사를 ‘캠퍼스’라 부른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구글 사옥은 마치 놀이터 같다. 직원의 행복감을 유지시키는 것이 구글 경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즐길 수 없다면 우리에게 회사는 끔찍한 감옥 같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사옥 디자인이 직원들의 행복 지수하고만 관련이 있을까? 잘 지은 사옥에서 일하는 직원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업무에서 더 두드러진 능력을 보여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업이 인재를 중요시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사람이 미래다’라는 식의 광고가 아니라 직원들의 터전도 살펴볼 일이다.
1 건축 디자인의 총아, 사옥 디자인은 어떻게 진화했나?
2 아디다스의 디자인 개발 센터 레이스 빌딩
3 구글 런던
4 AOL 미국 서부 본부
5 스노우피크 본사
6 다음 스페이스닷원
7 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
 
전 세계를 장악한 커튼 월, 기능성을 내세운 사무 빌딩의 대표적 이미지
사무 빌딩의 전형이 된 마천루가 1903년에 등장한 이래 1950년대까지 사무 빌딩 디자인은 고전적인 건축 양식을 활용하면서 높게 짓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의 명물 크라이슬러(Chrysler) 빌딩이다. 모든 건축이 그렇지만 특히 사무 빌딩은 건축주의 욕망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축이다. 크라이슬러 오너 월터 크라이슬러(Walter Chrysler)는 건축가 윌리엄 밴 앨런(William Van Alen)에게 “에펠탑보다 높은 건물을 지어달라”고 주문해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 건물답게 최초로 빌딩 외벽에 녹슬지 않는 강철을 입혔고, 40층에는 1929년형 크라이슬러 플리머스의 마스코트인 독수리 조형물을 달았다. 이처럼 고전 건축의 어휘를 계승한 사옥 건축 경향은 20세기 전반 내내 계속됐다. 그리고 1958년 위스키업체 시그램(Seagram)이 창사 100주년을 맞아 뉴욕에 지은 시그램 빌딩은 이런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설계한 이 빌딩은 외피 전체를 유리창으로 덮는 ‘커튼 월’을 완벽하게 구현한 최초의 고층 사무용 건물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정제되고 우아한 디자인의 신봉자로 “적을수록 아름답다(Less is more)”는 말로 유명한데, 시그램 빌딩은 이 철학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물 표면에 세로줄 금속 띠가 튀어나오게 하는 가장 간단한 디자인으로 건물을 날렵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덩치가 커서 둔중해 보이기 쉬운 대형 건물을 이보다 효과적으로 경쾌하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절제된 디자인은 단순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가 강해 업종과 업체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수많은 사옥 건물에 애용됐다. 정장 차림의 신사를 연상시키는 가장 무난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청계천 삼일빌딩도 그중 하나다. 그 영향은 지금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21세기 최신 건물인 서초동 삼성 사옥도 디자인 유전자를 보면 여전히 시그램 빌딩의 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사옥이 기업 이미지 홍보에 미치는 효과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무난한 디자인보다는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건물도 물론 꾸준히 시도되었다. 1980년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디자인한 홍콩 상하이은행 사옥은 기존 사무 빌딩의 미학을 전복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로 숨기던 구조체를 거꾸로 외부에 완전히 드러내고, 내부는 1층부터 12층까지 통째로 뚫린 공간을 배치했다. 역시 지금까지도 첨단의 이미지, 투명성 등을 내세우는 수많은 사무 빌딩이 이 건물과 비슷한 재료와 내부 구성을 반복해오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와 문화를 드러내는 사옥
다른 한편에서는 좀 더 직설적으로 자기 기업의 제품이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거나 아예 새로운 장식으로 존재감을 강화하는 사옥 디자인이 이어졌다. 건물 꼭대기를 고전 가구 형태로 형상화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바람을 일으킨 필립 존슨의 뉴욕 AT&T 빌딩이나 자동차 실린더 형태로 표현한 BMW 사옥이 대표적이며, 최근 사무 빌딩의 고정관념을 깨는 저층형에 완전한 원 형태로 화제가 된 애플의 신사옥 구상 등이 여기 해당한다. 앞서 말했듯 비슷비슷한 사옥 건물이 대부분이므로 조금이라도 특별한 형태의 사옥을 짓는 것이 기업 철학을 표현하거나 브랜딩 효과를 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무 건축의 개성화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사옥 건축 디자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건물 내부를 주목하는 시도다. 진짜 중요한 것은 유행을 따르기 마련인 건물 껍데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내부라는 인식에서 기업 특성에 맞게 내부 공간을 최적화하는 경향이다. 기업 문화의 정착과 창의성 제고가 기업 생존의 핵심 요소가 되면서 직원들이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즉 실내 공간이 변해야 창의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손쉽고 만족도 높은 방법이 인테리어 차별화다. 획일화되고 차가운 사무실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사무실로 만들어 작업과 휴식을 분리하지 않고 한 사무실 안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하는 이런 흐름은 주로 IT업종처럼 인재가 기업 경영의 핵심인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무실 분위기와 사옥 디자인이 단순한 환경 미화가 아니라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마케팅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사무실 안에 미끄럼틀과 디제이 박스 등을 설치한 페이스북 사옥, 직원들 스스로 공간 디자인에 참여해 다양한 틈새 공간을 내부에 집어넣은 네이버의 분당 사옥 그린팩토리 등이 있다.

1 뉴옥의 명물이 된 크라이슬러 빌딩.
2 유리창으로 덮은 ‘커튼 원’을 완벽하게 구현한 최초의 고층 사무용 빌딩, 시그램 빌딩.
3 애츨 신사옥 계획안.
4 커다란 버섯 모양 기동이 지금 봐도 파격적인 존슨 왁스 사옥.
장식용 인테리어가 아닌 기업의 본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옥 디자인
이처럼 직원을 배려하는 사옥 실내 디자인은 분명 재미있고 대중적이지만 인테리어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좀 더 본질적으로 공간 내부의 변화를 추구하는 건축 디자인도 종종 등장했다. 기업의 특성과 직무에 맞는 프로그램에 맞게 공간 전체를 구현하는 것으로, 디자인과 경영을 좀 더 본질적으로 접목하려는 시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1930년대에 설계한 미국 존슨 왁스(S.C. Johnson & Wax) 사옥이다. 위와 옆으로 넓게 트인 내부 공간에 커다란 버섯 모양 기둥이 숲처럼 들어찬 디자인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이 디자인은 사무실 공간에 늘 적용되는 감시 목적의 팬옵티콘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을 추구해 사무실 디자인의 지평을 넓힌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보다 더 정교한 실험으로는 네덜란드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Herman Hertzberger)의 건축이 있다. 인간관계의 특성과 사람들의 공간 이용 행태에 관심이 많았던 헤르츠버거는 한 사람이 한 장소에서만 일하는 자리 배치, 조직도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는 영역 배치의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이 옆으로는 물론 위아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을 만들고, 한 장소가 한 기능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내부를 선보였다.
사옥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국내 기업들
한국 기업과 제품은 실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극복하며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사옥 디자인은 아쉽게도 이런 성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재벌 사옥일수록 권위적이고 과시적이며, 기업 전체의 브랜드 철학이나 디자인 콘셉트 없이 건축주 개인의 취향과 욕망을 비문화적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보고 SOM이나 KPF 같은 외국계 거대 건축 설계 사무소나 스타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참신한 시도보다 진부한 디자인을 골라 오히려 차별화에 실패한 특성 없는 사옥만 양산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만큼 사옥 건축은 차별화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용산에 신사옥을 짓기로 확정한 아모레퍼시픽은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아모레퍼시픽은 건축주로서 새사옥 콘셉트를 명확히 정한 다음, 건축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먼저 아모레퍼시픽의 철학을 구현할 최적의 건축가를 복수 후보로 선정했다. 이후 건축주가 직접 후보 건축가의 작품과 성향을 현지 답사 등을 통해 파악한 뒤 지명 현상 공모를 실시하고 새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최종적으로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디자인이 선택됐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짓는 사옥이 최소 100년 이상 기업의 얼굴이자 심장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터전이 되게 하려면 이처럼 사전 설계와 디자인 과정에 아낌없이 투자해 전문가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로부터 최고의 결과를 뽑아낼 줄 아는 문화 경영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각 기업의 사무 방식을 먼저 분석하고, 이를 내부 공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려는 사옥 디자인은 국내에도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제주도의 다음 본사 사옥 스페이스닷원은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포털 사이트의 특성과 업무에 맞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이미 정해진 네모난 단면에 맞춰 회사 조직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와 생활을 파악해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그 모습이 그대로 외부 형태가 됐다. 내부 공간을 주목하는 최근 사옥 디자인의 경향은 직원 복지와 업무 효율을 강화하는 것인 동시에 건물 외피 디자인 못잖게 기업 이미지 마케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기자/에디터 : 임나리

[출처] 월간 디자인 Design + 교보문고 이북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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