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혼자서 외국인 등기소에 가는 길/ 혼잣말한다/ 이 동네 민들레꽃은 너무 크고 징그러워/ 언제든 비교하는 내 안의 이방인, 너를 데리고 다니기가 버겁다.” 김이듬 시인이 베를린에 거주하며 쓴 ‘이방인’이라는 시에는 내 안의 이방인, 즉 타자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담장 너머의 민들레꽃, 나와는 ‘다른’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몇 년 전부터 그 담장에는 제법 신선하고 흥미로운 토론의 장이 열렸다. JTBC <비정상 회담>을 기점으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MBC every1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의 TV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인의 관점과 시각에 투과된 한국(혹은 타국)의 모습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졌다. 그 중심에는 인간미 넘치는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알베르토 몬디(Alberto Mondi, 35)가 있다. 최근 평범한 직장인에서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해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 그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나보았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창업하게 됐어요. 사회적 기업 분야에 전문적인 대표님도 함께하면서 사업단계에서 혹시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될지 알게 됐죠. 옛날에는 정부나 국제기구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기업이 훨씬 더 큰 힘으로 소비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회를 바꾸려면 기업의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청년실업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발달장애인, 노숙인을 고용한 회사와 협력하고 있어요. ‘Element’라는 이름도 ‘성분’에 집중하자는 뜻으로 지었고, 모든 성분은 공개되고 있어요.”
방송 경력이 쌓이고, 활동 영역도 넓어지면서 그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외연이 확대된 만큼 내연도 확장된 것이다. 단순히 한국에 이탈리아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얼마 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문학 축제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국을 소개할 좋은 기회라며 기뻐했다. 유럽에서 한국은 여전히 미지와 무지의 대상이고, 안다고 해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다른 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잊을 수 없어요. 여러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죠. 일정은 힘들었어도 친구의 가족이라 더 의미 있었어요. 네팔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자연을 존중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었죠. 방송하면서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경험을 했어요. 특히 여러 사람을 만나서 좋았죠. 가끔 이탈리아 대사님을 만나면 ‘네가 대사다’하고 저를 놀리세요(웃음). 그런데 방송인으로서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해요. 대신 MC 보는 건 괜찮아요. 어릴 적부터 보이스카우트, 축구팀, 성당에서 해왔던 거라 무대공포증은 없어요. 긴장은 하지만 실수해도 괜찮아,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는 한국에 스포츠 관련 콘텐츠를 비롯해 이탈리아 음식과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웨이터, 음식문화, 장인정신 등 보여줄 게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알아갈 게 더 많은 한국과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다른 문화권이지만, 가족문화와 국민성 등 유사성도 많다. 덕분에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은 최소화됐고, 그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유대감을 느끼며 지낼 수 있었다. 장인, 장모님과도 별 문제 없이 지낸다며 환하게 웃었다.
“평창올림픽에 온 이탈리아인들도 한국인은 남부 이탈리아인과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남에게 관심도 많고, 처음에는 낯을 가려도 친해지면 정이 넘치죠. 친구가 우리 집 말고 호텔에서 숙박하면 ‘왜 가지? 나를 싫어하나?’하며 속상해해요. 먹는 것도 좋아해서 아침 먹으면서 점심 생각하고, 점심 먹으며 저녁 고민을 하죠(웃음). 이탈리아 부모님도 자식한테 관심 많고 결혼 전에 함께 살며 끝까지 보호해줘요. 한국처럼 가정의 달은 없지만, 1월 1일은 성가정의 날이고 아버지의 날, 어머니의 날도 있어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주의라서 가족에 대한 개념은 비슷해요. 한 마을에 친척들이 모여 사는데, 자주 보고 연락하고 엄청 친해요.”
그는 현재 한국인 아내와 아들을 둔 다문화 가정의 가장이다. 개별적인 두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에서 그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시대와 세대의 변화된 조류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가족의 형태는 변했어도 사랑의 본질은 그대로라고 했다. 이를 지키려면 믿음과 책임을 전제로 상대성을 인정하고 완벽함은 포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무엇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는 것이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부모로서 가르쳐줄 것은 가르쳐주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은 자신의 몫이다. 스스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가 미지의 세계였던 한국에서 꿈을 완성해 나가는 것처럼. 낯선 문화를 익히고 전혀 다른 언어로 사고하며.
“요즘에는 이탈리아에서도 한국말이 먼저 나와요. 아이고, 대박, 이렇게요(웃음). 저는 레오(아들)와 이탈리아어로 와이프는 한국어로 대화해요. 레오가 두 언어를 다 알아듣긴 하는데 단어를 섞어서 쓰죠. ‘눈 와!’ ‘아빠 안 자?’와 같이 간단한 문장도 만들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제 한국어 실력에 아쉬움이 커요. 중국어를 전공할 때는 원어민 교수님이 발음과 억양을 잡아주셨는데, 한국말은 그렇지 못했죠. 한국인들의 말을 따라 하며 배운 길거리 한국어예요. 없는 발음과 받침도 많고 순우리말, 외래어, 문법, 다양한 표현 때문에 서양인에게 한국어는 중국어보다 더 어려워요. 지금은 한국말을 더 오래 써서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기본기가 약해서 자신감이 없기도 하죠. 대신 글씨는 가장 예쁘게 쓴다고 자부해요(웃음).”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 제2의 고향 한국에서 살아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사람은 태도가 중요하지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늘 이 문장을 새긴다. 자신이 머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꽃을 피우는 일, 그것은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삶을 존중하며 온전히 즐기는 법이다. 내 안에 숨어있는 이방인과 화해하며.


글. 사진 김신영 기자
@금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