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 걸린 물고기의 가족 찾기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 상상의 바닷속에서 위험에 처한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 감동적으로 그려
기억상실증에 걸린 물고기 도리는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찾아나서면서 별별 일을 다 겪는다.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이하 ‘도리’)가 지난 6월 17일 미국에서 개봉했다(국내 개봉 7월 7일). 전편 ‘니모를 찾아서’(이하 ‘니모’)가 나온 지 13년만이다. 할리우드에서 13년은 거의 한 세기와 맞먹는 시간이다.
니모의 재미있고 속도감 넘치는 바닷속 모험을 그린 ‘니모’는 전 세계 가족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은 약 8억5000만 달러(약 9800억원)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픽사의 최고 히트작 ‘토이 스토리’(1995)를 위협했다. 당연히 모두가 속편을 기대했다.
전편에서 도리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코미디언 엘런 디제너러스는 속편이 나오기를 누구보다 기다렸다. “많은 영화가 속편을 몇 편씩 내는 동안 ‘니모’ 같은 좋은 작품의 속편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다시 말해 ‘도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롤링스톤즈 로큐멘터리(로큰롤+다큐멘터리) 이후 관객이 가장 기다렸던 영화다. 배경은 ‘니모’와 똑같은 상상의 바닷속이지만 이번엔 전편에서 니모의 들러리였던 도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뭐든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블루탱 물고기다.
도리의 친구 대왕오징어와 우호적이지만 자기 잇속만 차리는 문어(사진)도 재미를 더한다.

플롯은 단순하다. 도리가 어릴 때 헤어진 부모 찰리와 제니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기억이 단편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데다 방금 만난 사람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
도리의 기억상실증은 플롯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교적이면서도 불안하고 쉽게 흥분하는 물고기의 목소리를 내는 디제너러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디제너러스의 목소리 연기는 그녀가 진행하는 토크쇼의 캐릭터에 만화적인 분위기를 살짝 가미한 듯하다.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는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픽사의 바닷속 세계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푸른색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짙은 푸른색과 녹색이 끝없이 펼쳐지는 ‘도리’의 바닷속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도리의 친구와 적들을 만난다. 엄청나게 큰 대왕오징어와 우호적이지만 자기 잇속만 차리는 문어 등. 또 픽사 애니메이션 특유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도 펼쳐진다. ‘도리’는 픽사의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위험에 처한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를 빠른 템포의 액션으로 펼쳐 나간다.
가족을 찾아나선 도리는 ‘해양생물 연구소’의 격리실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곳에선 인간들이 흐릿한 영상으로 처리되며 (해양 생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에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장면들이 있다. 베키라는 이름의 지독하게 못생긴 아비새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는 가운데 바다로 떨어지는 트럭 등이다.

엘런 디제너러스는 사교적이면서도 불안하고 쉽게 흥분하는 물고기 도리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픽사는 최근 인간(또는 동물)의 두뇌에 얽힌 수수께끼에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해 평단의 찬사를 받은 ‘인사이드 아웃’에는 어린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도리’는 감정 대신 기억력에 초점을 맞추며 감동적인 이야기는 도리의 마음 속에서 펼쳐진다. 지금은 잊혀진 가족과 함께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픽사의 최고 영화들은 독창성이 돋보인다. 요리하는 생쥐, 신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장난감 등 엉뚱한 설정에 따뜻한 감성을 혼합한다. ‘도리’는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지만 그 범주엔 들지 못한다. ‘니모’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영화는 기시감을 자아낸다. 상냥한 거북이들이 미국 서해안의 바람둥이 서퍼처럼 농담하는 장면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전편이 나온 이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기억상실증보다는 기시감이 나을지도 모른다. ‘도리’를 보는 어린이 관객은 2003년 여름 ‘니모’가 개봉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출처] 뉴스위크 Newsweek(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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